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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과거사에 대한 예의… 베트남과 비교하면

입력 | 2023-05-30 14:00:00


진실은 다면적이다. 글로 먹고사는 기자가 이렇게 쓰면 참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모른 척하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취재한 사실을 안 쓰고는 못 견디는 직업병 같은 것이 기자들한테는 있다.

서론이 길어 죄송한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는 베트남 관광지 다낭에서 자동차로 30분쯤 가면 꽝남성 하미마을 위령비가 있다. 전쟁, 특히 내전을 겪은 나라 치고 가슴 아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으랴만 하미마을 참사는 우리 군과 관련돼 더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러나 최근 쏟아진 이 위령비의 연꽃문양 관련 기사는 꼭 진실이랄 수 없어 마음이 무겁다.

한국 정부가 덮은 ‘베트남 하미마을 비문’ 살려냅시다(한겨레신문 5월 12일자)

“…(중략) 뒷면에 학살극을 담은 위령시를 새겼으나 (참전) 군인들이 부대 이름을 빼달라고 하자 주민들이 아예 대리석으로 덮어버렸다.” (경향신문 5월 26일자)

하미마을 위령비의 연꽃문양 .  뉴시스



● 한국은 그런 압력 가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노파심에 강조하자면 나는, 한국군이 개입한 ‘민간인 학살 관련’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위령비 속 끔찍한 추모문을 한국 정부가 덮으라고 압력을 가했던 것이 아니고, 우리 군인들의 종용에 주민들이 위령시를 덮은 것도 아님은 알려야겠다 싶은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정부는 2001년 그런 위령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베트남 공산당 국제부에 위령비의 존재를 알렸을 뿐이다. 나머지는 베트남에서 정리했다. 과거사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공식 입장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는다’ 이기 때문이다.

당시 주(駐)베트남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현장에 있던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저서 ‘베트남, 잊혀진 전쟁의 상흔’에 모든 과정을 자세히, 그것도 감동적으로 써놓았다(2003년 초판이 나왔다. 팩트는 최근 저자가 다시 확인해줬다). 그때 상황을 보도 듣도 못했던 이들이 마치 한국 정부가 악마라도 되는 듯, 위령비마저 훼손시켰다고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이용준의 저서  ‘베트남, 잊혀진 전쟁의 상흔’ 표지  



 ● 게릴라 촌락 하미마을, 절반이 열사였다
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과 시민모임 소박한자유인(대표 홍세화)은 원래의 비문을 다시 살려내자는 취지로 지난달 시민평화기록전을 열었다. ‘한국군은 1968년 2월 24일 (하미)마을에 진입해 135명을 학살했다…(중략) 2000년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지원으로 위령비를 건립했다가 한국 정부가 사건의 참상을 전하는 비문 내용을 문제 삼으며 그 위를 연꽃 그림으로 덮도록 해 논란이 되면서 더욱 알려졌다’는 게 한겨레 소개 기사다.

팩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5대대 전술책임지역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활동하는 ‘게릴라 사회’였다. 연세대 역사와공간연구소 한성훈의 2018년 논문 ‘하미마을의 학살과 베트남의 역사 인식’에 따르면, 피해 유족을 대표했던 응우옌 반 꺼이 역시 15살 때부터 낮에는 농부로, 밤에는 전사로 활약한 유격대원이었다. 베트남 정부가 하미마을 희생자 135명 중 60명을 열사로 인정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민간인 피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군이 일방적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전설의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평전엔 베트콩이 정의와 자유의 기사인 줄 알았다가 팔라치의 친구인 아르헨티나 종군기자가 베트콩에 잔혹하게 처형되는 모습을 보고 치를 떨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군이 저지른 만행은 항상 기록으로 공개되는 반면 베트콩의 만행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북한군은, 중공군은 안 그랬겠나).


● 한국 정부가 초등학교 40개나 짓는 마당에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인식도 그리 단순하진 않다. 영화 ‘국제시장’ 식의 투철한 반공정신부터 “월남 패망에 희열을 느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 식의 인식도 존재한다.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군가를 들으며 성장한 외교관 이용준은 2000년 초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베트남 공안부 실세 응우옌 꽝 빈 국제국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두 나라가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의 희생자라는 데 공감했다.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파월 장병으로 참전했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돌아온다. 그 시절 반공 정신은 보통 사람의 애국심이었다. 영화 화면 캡처 

그 실세가 “유사한 역사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크게 성공했으나 베트남은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한국이 인도적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이것이 베트남 관리들의 일반적 입장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뜻을 모은 것이 초등학교를 지어주는 것이었다. 이용준은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 양민 피해가 있었다고 주민들이 믿는 험준한 산골 40곳에 ‘대한민국’이 새겨진 학교를 지어선 주민들이 한국의 우정을 기억하고 전쟁의 아픈 상처를 잊도록 해주고 싶었다.

윗물과 아랫물의 온도는 달랐던 모양이다. 현지답사 중 이용준이 맞딱뜨린 하미마을 위령비 추모문은 너무나 잔혹했다. 2001년 신년인사 겸 만난 베트남 정부 인사에게 이 위령비 존재를 전했더니 반응이 심각했다. 당과 정부가 한국과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하는 마당에 대체 누가 그런 위령비를 건립했느냐며 배경 조사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거였다.


● 베트남 인민위원회는 주민들 설득했다
일당독재국가답게 바로 조치가 됐다면, 감동 따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꽝남성 인민위원회는 “베트남 정치체제상 문구를 변경하려면 주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우리 측에 양해를 구하고는 수없이 주민회의를 열어 설득하더라는 거다. 베트남은 인민의 나라이며, 그것이 호찌민 주석이 남긴 베트남식 공산주의라는 데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참 후 응우옌 반 하이 꽝남성 인민위원장이 “끔찍한 표현들은 모두 삭제하기로 합의됐으나 ‘학살’이라는 단어를 존치시킬 지 여부를 놓고 일부 주민이 반대를 굽히지 않는다”며 다시 양해를 구해왔다. 이용준은 반대했다. 아예 수정못하는 건 할 수 없지만 ‘검증되지도 않은 학살’ 표현이 들어간 수정안에 우리 정부가 동의할 수는 없다고 했다(실제로 참전군인들이 형성한 ‘민간기억’은 학살을 부정한다. 권예진 최은봉의 2023년 논문 ‘한국의 베트남 전쟁 공공기억과 민간기억의 담론 갈등’).

나중에 알고 보니 ‘학살’이란 말은 죽어도 못 뺀다는 주민이 달랑 세 명이었다. 권력 막강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은 갓난아기 때 엄마가 끌어안고 대신 총을 맞는 바람에 살아났고, 또 한 사람은 거의 죽다 서독에 공수돼 간신히 살았다는 소리에 이용준은 눈물이 핑 돌더라고 했다.


● “왜곡하느니 기록 않겠다”고 주민 결정
“그렇다면 설득할 필요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고통주기를 원치 않는다. 위령비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잊어버리겠다.” 이용준은 마을 주민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건배를 제의했다. 그때부터는 다함께 한국식으로 정신을 잃도록 마신 모양이다. “함께 마셔주기만 해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과거사는 소리 없이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고 그는 책에 적었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는데 2001년 5월 초등학교 기공식 무렵 인민위원회에서 대사관에 통보를 해왔다. 위령비의 문안을 온건하게 수정하는 대신 아예 몽땅 삭제하기로 주민들이 최종합의를 했다는 거다. “역사를 왜곡해 기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기록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전언에 이용준은 띠용,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지난날 외세와의 섣부른 타협이나 굴복보다는 항상 정면 대결이라는 정도(正道)를 선택해왔듯이, 위령비 문구 문제도 베트남인의 기개에 합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기공식 행사를 마치고 하이 위원장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이용준을 데려간 위령비 뒷면에는 소름돋는 추모문 대신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꽃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올해 2월 현지에서 열린 하미마을 학살 55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한-배 평화기금’ 구성원들이 위령비에 절을 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 언론 ‘vietnamnet’ 홈페이지 캡처



● 유독 극단적인 한국 좌파의 역사인식
베트남전쟁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 이상으로 다면적 진실을 내포한 복합적 중층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역사교과서만 소개하자면, 제국주의를 종식하고 공산주의 혁명을 완성한 대미구국항전이라는 게 그들 시각이다(김종욱 2017년 논문 ‘한국과 베트남의 베트남전쟁 인식과 교육). 그럼에도 경제발전에 뒤쳐진 현실 극복을 위해 ‘과거를 덮고 미래를 위해 협력하자’는 것이 베트남 정부 공식 반응이기도 하다.

이에 역행하는 것이 한국의 비정부단체들이라고 김종욱은 논문에서 지적했다. 전쟁 피해자 발굴과 보상 등 민감한 문제를 제기해 양국 정부 입장을 곤란하게 한다는 점에서다. “전쟁은 특수한 상황이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베트남 측 소리는 듣지도 않는다. “전쟁 중 민간인 피해에 대해 한국이 유독 다른 나라들보다 경직되고 과도한 인식과 해석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김종욱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했다.

하미마을 사건에 대해 베트남 거주민 5명은 시민단체 도움으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주 위원회는 표결 결과 ‘각하’를 결정했다. 베트남 전쟁 시기 벌어진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법 제2조 4항에서 규정하는 진실 규명의 범위인 ‘권위주의 통치 시기’의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 역사를 대하는 우리에게 예의는 있는가
경직된 좌파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일제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들이 세상 약자들의 문제를 대신 짊어진(척 하는) 데는 존경을 표하는 바다. 그런 양심적 인사들이 왜 북한인권에는 무심한지, 북한과 중국에 대해선 어찌 그리 관대한지, 미국과 일본은 어째서 불구대천의 원수인듯 잡아먹지 못해 난리인지 궁금할 뿐이다.

올해 3월 17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위원들이 책상 위에 ‘역사를 팔아서 미래를 살 수는 없습니다’라고 쓰여진 피켓을 놓고 앉아 있다. 민주당은 같은 달 16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내용을 비판하며 이 같은 시위를 벌였다. 동아일보DB

베트남이 ‘미래를 위해 과거를 덮는다’는 역사인식을 지닌 것은 과거사를 잊는 것도,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 아닌 국가차원의 아픔이 없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국가간 협력이 불가피한 세계에서 더 큰 평화와 미래를 지향하는 자세, 역사의 다면적 진실을 대하는 그들의 예의에는 고개가 숙여진다.

공산주의 베트남이 이럴진대 과거에 징글징글하게 매달려 나라와 민족의 발목을 잡는 대한의 좌파는 별종이 아닐 수 없다. 살아보지도 않은 과거를 무자비하게 평가하는 그들의 오만, 밴댕이 속알딱지만한 편협한 정신을 북한이 쏜다는 위성에 태워 날려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