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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루이비통 VS 경복궁의 구찌

입력 | 2023-05-31 03:00:00




서울 시민의 일상에 보내는 찬가
루이비통 2023 프리폴 여성 패션쇼

잠수교에서 열린 루이비통 쇼는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었다. 루이비통 제공

루이비통

컬렉션 2023 프리폴 여성 패션쇼
장소 잠수교 795m(1976년)
협업 황동혁 감독(‘오징어 게임’)
한국 진출 1991년 서울신라호텔 부티크
소속 LVMH그룹
2022년 한국 매출 1조6900억 원


“각각 치배 다 모였으면 1착 2착 단 3착 끝에 행군하랍신다.” 어둠이 내려앉은 한강에 사물놀이패 상쇠의 걸쭉하고도 우렁찬 소리가 울려 펴졌다. 곧 푸른 조명이 켜진 터널에서 정호연을 필두로 모델들이 걸어 나오더니 800m에 가까운 교각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산울림의 ‘아니벌써’, 펄 시스터즈의 ‘첫사랑’,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이어졌다. 잠수교는 그대로 런웨이가 됐고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과 바람, 멀리 보이는 강남과 남산의 야경까지도 쇼의 일부가 됐다.

지난 4월 29일 루이비통의 2023 프리폴 여성 패션쇼가 서울 잠수교에서 열렸다. 자연환경, 건축미와 예술적 조우 등 브랜드가 추구하는 요소를 충족하는 곳을 찾아 쇼를 열고 있는 루이비통은 잠수교를 런웨이로 선택하며 “한강은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서울의 정서가 담긴 곳”이라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태원과 반포를 연결하는 잠수교는 1976년 개통돼 ‘강남 시대’를 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서울의 랜드마크다. 어릴 때 우리가 하던 놀이를 소재로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을 탄생시킨 황동혁 감독이 이번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다리를 과거, 현재, 미래가 어우러져 놀라운 에너지를 뿜는 공간으로 바꿔냈다.

루이비통이 한국에서 컬렉션을 개최한 건 2019년 10월 인천국제공항 격납고를 무대로 한 ‘2020 크루즈 컬렉션 스핀오프 쇼’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는 이미 해외에서 진행한 패션쇼를 재현한 것이었다면, 이번은 오롯이 한국에 포커스를 맞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한국 시장의 위상과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1991년 서울신라호텔에 국내 1호점을 연 루이비통은 지난해 매출 1조69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5% 성장했고, 영업이익도 38% 증가한 4178억 원, 영업이익률은 24.7%를 기록했다.

배우 배두나의 오랜 친구이자 한국영화 ‘괴물’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루이비통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영화 속에서 괴물이 날아다니던 한강 다리를 레트로와 미래지향적인 무드가 섞인 의상과 런웨이로 수놓았다.

프리폴 컬렉션은 디자이너들이 봄과 가을 패션쇼 사이에 발표하는 간절기 컬렉션으로 가을 패션의 예고편이다.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구조적이며 미래적인 스타일이 중심을 이뤘다.

이날 쇼에는 신세계·롯데·현대·갤러리아 등 국내 4대 백화점 대표를 비롯해 걸그룹 르세라핌, 뉴진스 혜인, 배우 장미희·고현정·배두나 등이 셀럽으로 참석했다. 루이비통은 자사 SNS 채널 및 서울 곳곳에 설치된 LED 스크린을 통해 패션쇼를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루이비통 쇼에 참석한 뉴진스 혜인, 배우 고현정,  걸 그룹 르세라핌 멤버들(위부터). 루이비통·뉴시스AP 제공





한국의 헤리티지와 서핑의 하이브리드
구찌 2024년 크루즈 패션쇼

구찌는 크루즈 쇼의 장소로 경복궁을 선택했다. 구찌 제공

구찌

컬렉션 2024 크루즈 패션쇼
장소 경복궁 근정전 행각 235m(1395년)
협업 정재일 음악감독(‘기생충’ ‘오징어 게임’)
한국 진출 1998년 서울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소속 케어링그룹
2022년 한국 매출 1조 원 이상으로 추정(비공개)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 한가운데 자리 잡은 14세기 고즈넉한 고궁. 이탈리아 피렌체의 피티 궁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프랑스 아를의 프롬나드 데 알리스캄프 등 세계 각국의 유서 깊은 장소에서 쇼를 진행한 바 있는 구찌의 선택은 경복궁이었다.

크루즈 쇼는 봄과 가을 컬렉션 사이, 상류층의 럭셔리한 휴가를 모티프로 진행되는 패션쇼. 구찌가 아시아에서 크루즈 쇼를 개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인의 각별한 구찌 사랑에 대한 답례로 풀이된다. 1998년 서울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구찌는 정확한 매출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2022년 1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쇼에 앞서 구찌는 “한국은 역사, 문화, 창의성의 생생한 중심지로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녔고, 구찌 하우스의 핵심 가치에 큰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구찌는 이번 쇼에서 한국의 헤리티지를 담아내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근정전 팔작지붕 단청을 조명하는 것으로 쇼를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들이 울려 퍼졌다. ‘오징어 게임’의 정재일 음악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오징어 게임’의 OST, 직접 작곡한 음악 등을 BGM으로 사용해 때로는 긴장감 넘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패션쇼에 입체감을 더했다. 루이비통의 프리폴 컬렉션에서 클로징을 맡았던 모델 최소라는 구찌의 크루즈 쇼에서는 오프닝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구찌는 이번 쇼에서 브랜드 아카이브, 특히 1990년대 후반 톰 포드 시절의 실루엣을 2010년대 컬러 팔레트를 통해 선보였다. 전반적으로 과거와 현재, 스트리트와 럭셔리, 스포츠웨어가 혼재된 하이브리드 스타일이 중심을 이루었다. 풍부한 텍스처가 느껴지는 부클레 스커트 슈트, 실크 블라우스, 키튼 힐로 대표되는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 한강의 윈드서퍼와 제트 스키어들이 입는 스쿠버다이빙용 웨트슈트 등 서울의 일상에서 영감받은 스포츠웨어와 함께 선보이는 식이다. 조형미가 돋보이는 A라인 드레스, 한복의 옷고름을 연상시키는 리본이 달린 슈트, 한복의 오방색을 차용한 K-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구찌는 한국의 전통적인 의복에 대한 영감을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구찌 쇼에 참석한 아이유, 엘리자베스 올슨과 로비 아네트 부부, 김혜수(위부터). 뉴스1 제공 

이날 패션쇼엔 박찬욱 감독, 배우 이정재·김혜수·신민아, 구찌 앰배서더인 배우 겸 가수 아이유, 아이돌 뉴진스의 하니 등 유명인과 재계 관계자, 최응천 문화재청장 등 5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쇼는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컬렉션을 마친 후 소란스러운 애프터파티로 주민 신고가 접수되는 등 물의를 빚은 점은 옥의 티.


김명희 기자 may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