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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IT] 기술유출 판례 (4) 삼성·LG 아몰레드 기술 유출

입력 | 2023-05-30 14:41:00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삼성·LG 아몰레드 기술유출 판례’로 본 기술유출 혐의 입증 문제(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12. 10. 선고 2012고단2865 판결 등)

“그가 신용카드형 USB를 벨트 버클 뒤쪽에 붙이거나 신발 아래 숨겨 가지고 나온 이유”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BOE사가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아몰레드(AM-OLED,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시장점유율 2위(시장점유율 12%)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시장점유율 56%로 확고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BOE사의 고속 성장이 더 뼈아프게 느껴집니다.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었던 발판은 하이디스를 인수해 가져간 LCD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BOE사가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아몰레드 기술 또한 국내 기업으로부터 불법적으로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도 많았습니다. BOE사가 지난 수년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핵심기술 인력을 불법 스카우트해 왔기 때문입니다. 2017년 1월경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OLED 증착 기술을 BOE사의 자회사(시네바)로 빼돌리려 한 연구원이 경찰에 적발됐으며, 2018년경에는 OLED 패널 분야 삼성전자 수석(부장급) 연구원 3명이 비밀리에 BOE사로 옮겨간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6월,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은 지난 10여년간 BOE사로 이직한 한국 엔지니어가 100명 이상이라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BOE사가 아몰레드 사업 진출을 선언한 것은 2011년 8월경입니다. 오르도스(鄂尔多斯)에 중국 최초로 5.5세대 아몰레드 생산라인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인데, 2012년 6월경 검찰은 이스라엘에 본사를 둔 디스플레이 패널 검사장비업체 오보텍코리아 직원들을 기소합니다. 2011년 11월경부터 수차례 삼성과 LG의 아몰레드 핵심 제작 기술을 유출한 혐의입니다. 오보텍의 주요 고객사는 삼성과 LG의 경쟁업체인 중국 BOE사와 CSOT, 대만 AUO사 등이었고, 마침 오보텍의 검사장비를 중국에서 대량 발주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2012년 시장규모 90조원에 달하는 국내 아몰레드 핵심 기술이 BOE사 등 중국 기업으로 유출된 것 아니냐는 언론보도가 잇따랐습니다.

오보텍코리아 직원이 아몰레드 기술을 빼돌린 방법도 충격을 주었습니다. 검찰수사 결과, 해당 직원은 광학검사장비 점검을 위해 삼성과 LG 생산공장을 출입하면서 신용카드형 USB 등을 몰래 들여와 아몰레드 패널 공정별 회로도 실물 사진 등 핵심기술 자료를 저장한 뒤 벨트 버클 뒤쪽에 붙이거나 신발 아래에 숨겨 반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유출된 자료는 발표용 자료로 정리돼 오보텍 본사 및 중국 BOE사, 대만 AUO사 등 외국 경쟁업체를 담당하는 해외지사 소속 직원들에게 공유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검찰은 오보텍 측이 상당 기간 조직적으로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된 아몰레드 기술을 빼내 해외로 유출한 것으로 판단해 한국지사 직원 6명과 오보텍코리아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오보텍은 법인 기소를 피하기 위해 ‘오보텍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삼성과 LG 역시 망할 것’이라며 수사팀을 압박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90조원 아몰레드 기술 유출’ 오보텍 누명 벗었다…8년 만에 무죄 확정

2018년 7월 20일자 한 언론사의 기사 제목입니다. 검찰 기소 당시 엄벌에 처해질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법원은 아몰레드 핵심 기술을 USB에 담아 몰래 반출한 오보텍코리아 직원 1명에 대해서만 1천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관련자 5명 및 오보텍코리아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확정했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12고단2865, 2013노4413, 대법원 2015도464).

오보텍 측은 삼성과 LG의 아몰레드 기술을 USB에 담아 빼돌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고객사 생산 제품의 결함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노하우를 얻기 위해 삼성과 LG의 정보를 정리·취합·공유한 것으로 정당한 업무 방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USB를 무단반출한 직원 이외에 다른 직원들과 오보텍코리아는 불법 유출된 자료임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와 제반 사정을 근거로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죄를 적용하기 위해 입증해야 하는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 및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기관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USB를 무단 반출한 직원은 예정된 디스플레이 회로(마스크) 패턴 변경 후 결함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하지 못하는 문제(디펙트 포지셔닝)가 발생하더라도 광학검사장비 문제가 아니라는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자료를 반출한 것이라고 변소했는데, 상식적으로 향후 클레임에 대비한 자료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신용카드형 USB 등을 몰래 들여왔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기술 업계에서는 미국, 일본 등 기술 선진국과 같이 핵심 기술이 유출된 사실만으로도 강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일벌백계식 접근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기술유출 범죄가 적발 및 혐의 입증이 어려운 범죄인 것은 맞지만, 재판 과정에서 실체적 진실이 당초 알려진 내용과 크게 다른 경우도 많다며 기술유출 범죄의 무죄율이 일반 형사 사건 무죄율보다 크게 높은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하면, 2018년부터 최근 5년간 국가 핵심기술 해외 유출로 발생한 피해액이 25조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단 한 번의 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국가 핵심기술 유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실제 적용하고 있는 양형 기준은 턱없이 낮다며 양형 기준을 글로벌 스탠다드로 맞출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향후 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됩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국내 포탄 제조 기술 미얀마 유출 판례(서울중앙지방법원 2015. 9. 23. 선고 2015고단5049 판결 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