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김남국이 미국 의원이었다면[오늘과 내일/박용]

입력 | 2023-05-30 21:30:00

‘김남국 방지법’, 국회규칙 없어 무용지물
거래 수시공개 ‘한국판 스톡법’ 마련해야



박용 부국장


한국에 코인 투자 논란으로 탈당까지 한 김남국 의원이 있다면, 미국엔 코인 스캔들로 추락한 매디슨 코손 전 공화당 하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이 있다. 김 의원은 1982년생, 코손 의원은 1995년생으로 둘 다 젊다. 거액의 코인을 보유한 ‘코인 고래’였고 실체가 불분명한 잡코인에 손을 댔다가 의회의 윤리 심판대에 오른 점도 닮았다.

미 하원 윤리위원회가 내놓은 81쪽짜리 보고서에 따르면 코손 의원은 2021년 12월 21일 15만 달러를 투자해 미국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나스카(NASCAR) 우승자 브랜던 브라운 이름을 딴 밈코인(농담이나 유행어 등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코인)인 ‘LGB(Let’s go, Brandon)’ 1800억 개를 매입했다. 당시 ‘Let’s go, Brandon’이라는 표현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공격하는 ‘밈’으로 유행했다. 코손 의원은 자신이 투자한 코인을 동영상 등을 통해 홍보까지 했다.

코손 의원이 투자하고 9일 뒤 LGB코인 측은 “2022년 나스카 시즌에 브랜던 브라운을 후원한다”고 발표했고, 코인 가격은 치솟았다. 코손 의원은 다음 날 보유 중인 코인 일부를 매각해 현금을 회수했다. 나스카 측은 일주일도 안 돼 LGB코인의 후원 계획을 거부했다. 코인 가치는 급락해 결국 휴지 조각이 됐다. 윤리위는 이 과정에서 코손 의원이 금전적 이득을 얻어 이해충돌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코손 의원의 암호화폐 매입 조건이 일반인보다 더 관대했고 이는 부적절한 선물”이라며 선물의 가치에 해당하는 1만4000달러를 기부하게 했다. 1990년대생 최초로 하원에 입성한 코손 의원은 코인 스캔들과 의원답지 못한 언행을 일삼다가 지난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도 떨어졌다.

미국에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무렵 의원들이 행정부 고위 관료들과 회의에 참석한 뒤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CBS 탐사보도로 드러났다. 이 결과 의원들의 주식 거래 내역을 45일 이내에 온라인에 공개하는 내용이 포함된 ‘스톡법(STOCK Act·Stop Trading on Congressional Knowledge Act)’이 2012년 통과됐다. 2018년엔 코인도 추가됐다. 코손 의원도 LGB코인 거래를 늦게 공개하는 바람에 1000달러를 물어야 했다.

김남국 의원이 미 의원이었다면 2021년 1월 LG디스플레이 주식 9억8000만 원어치를 매각하고 45일 이내에 공개했어야 한다. 그 돈으로 코인을 매입해도 마찬가지다. 그랬다면 그가 그해 7월 가상자산 과세를 미뤄주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할 때 곧장 이해충돌 논란이 일었을 것이다. 나중에 ‘입법 로비’ 의혹이 제기된 ‘P2E(Play to Earn·돈 버는 게임)’ 코인을 여러 차례 매입했을 때도 내부거래와 이해충돌 감시망에 포착됐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김남국 방지법’(국회법 개정안,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의원들이 보유한 가상화폐를 주식처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등록하게 하자는 거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의 핵심인 ‘사적이해관계 등록’ 조항(32조2)이 국회를 통과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주식 등을 등록하고 공개하는 구체적 절차를 담은 국회 규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래 놓고 이번에 김남국 방지법이라며 코인을 하나 얹었다. 그러니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면피 대책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여야 의원들이 자정 의지가 있다면 하루빨리 국회 규칙을 제정하고, 의원들이 주식이나 코인을 백지신탁하지 않는다면 미국처럼 거래 내역을 온라인에 그때그때 공개하게 하는 한국판 ‘스톡법’을 시행해야 한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