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에 묻지마 총격 당한 랠프 목숨 건졌지만 트라우마 시달려 46일 만에 ‘뇌손상을 위한 레이스’ ‘팀 랠프’ 친구 등 1000명과 함께 해
퇴원 후 변호사와 함께 지난달 병원에서 총상 치료 후 퇴원한 16세 소년 랠프 얄(오른쪽)이 리 메릿 변호사와 함께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벤치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 사진 출처 리 메릿 인스타그램
29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한 공원에서 왼쪽 이마에 흉터가 있는 16세 흑인 소년 랠프 얄이 메달을 받았다.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데이’를 맞아 열린 36회 ‘뇌 손상을 위한 레이스’에서 1.5마일(약 2.4km)을 완주한 랠프는 주최 측 관계자가 목에 메달을 걸어주자 나지막이 “와우”라고 읊조렸다.
랠프는 46일 전인 지난달 13일 총을 맞았다. 이웃집에 놀러 간 두 동생을 데리러 갔다가 실수로 다른 집의 초인종을 눌러 변을 당했다. 집주인인 84세 백인 남성 앤드루 레스터가 쏜 권총에 머리와 팔을 맞은 것이다. 머리에 날아든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총격의 트라우마는 오래 남았다.
촉망받는 ‘음악 소년’인 랠프는 매일 학교에 나가 합주를 하는 일상으로 돌아가길 갈망한다. 하지만 아직 많은 시간을 공처럼 몸을 웅크린 채 침대에서 보낸다. 편두통과 불안감, 감정 기복 때문이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레스터는 아직도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모인 페이스 스푼모어는 “랠프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크지 않을 수 있다. 정말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고 단번에 치유할 수도 없는 상처”라고 말했다.
대회 시작에 앞서 랠프의 어머니인 클레오 나그베는 “모두가 뇌 손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뇌 손상 환자들을 돕기 위해 노력해 주면 좋겠다”며 총기 폭력을 막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스푼모어는 “랠프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사고를 당한 뒤에도 여전히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