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적폐수사 때와 달라진 폭력시위 대응 바람직한 변화이지만 오락가락은 그 자체가 법치에 반해 냉정한 반성이 전제돼야
송평인 논설위원
얼마 전 민노총 건설노조의 서울 도심 1박 2일 술판 노숙과 출퇴근길 행진이 큰 불편을 끼쳐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지하철을 상습적으로 멈추는 시위 등 불법 시위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된 건 문재인 집권 때 서울중앙지검의 윤석열 지검장-윤대진 1차장-이진동 형사3부장 라인이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의 책임을 물어 경찰관들을 기소하면서부터다.
2015년 11월 서울 도심 시위 사상 가장 폭력적인 시위 중 하나가 벌어졌다. 시위대가 경찰이 세워놓은 차벽을 무너뜨리려는 과정에서 경찰 차량 52대가 부서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백 씨는 경찰 차량을 넘어뜨리려고 밧줄을 걸어 당기다가 경찰 직사살수에 쓰러져 나중에 숨졌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경찰 대처에 불법이 있다고 보지 않았으나 문재인 정부의 검찰은 이례적인 재조사로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해 기동단장과 2명의 살수요원을 기소했다.
70세 고령으로 젊고 건장한 성인도 버텨내기 힘든 직사살수에 맞서 홀로 밧줄을 당긴 백 씨의 행동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자초한 위험은 합법적이더라도 법적 보호의 의무가 없는데 심지어 불법적이었다. 그런데도 경찰관들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다.
난 2007∼2010년 유럽 특파원을 지냈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 앞에서 폭력 옹호적인 극좌파의 시위를 본 적이 있는데 시위라기보다는 경찰이 앞뒤 좌우로 꽁꽁 묶어서 끌고 다니는 포로 행진 같았다. 프랑스 파리는 시위가 잦고 시위가 끝날 무렵에는 카쇠르(casseur)라고 하는 복면 쓴 폭력배들이 끼어들기 일쑤여서 경찰의 최루탄 해산 시도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영국 런던에서는 ‘가축우리 가두기(corralling)’라는 시위 진압 방식도 경험했다. 경찰이 차단선을 친 골목에 갇히면 밥도 물도 못 먹고 신원을 밝히고 항복하기 전까지는 나올 수 없다. 밀고 나오려 했다가는 가차 없는 곤봉 세례가 기다린다. 미국 사정까지는 현장감이 없지만 총에 맞아 죽은 시위대 뉴스가 간혹 들려온다.
경찰관들은 손해배상 소송에도 시달렸다. 공권력 행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국가와 공무원 개인 양측을 상대로 진행된다. 소송에서 지면 국가가 먼저 배상하고 공무원에게 책임이 있는지 따져 구상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일단 국가가 나서서 소송에 전력 대응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국가만 소송을 포기한 게 아니라 경찰관들에게도 소송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는 희한한 일을 벌였다. 경찰관들은 소송에서 다퉈보지도 않고 유족의 청구를 인낙해야 했다.
질서야 무너지건 말건 시위를 막다가 대강 그만뒀으면 당하지 않았을 일이다. 임무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는 국가권력에 의한 조리돌림이었다. 이러니 어느 경찰관이 책임감을 갖고 폭력 집회를 막을 것인가.
윤 대통령은 최근 “문재인 정부가 불법 집회와 시위에 대해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 도로 점거 등 국민께 불편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 사태와 무관하다는 듯 말하는 건 듣기 거북하다.
우리는 법원의 집단 이성이 실패하는 걸 한일 관계의 톱니바퀴에 쇠막대기를 걸어 멈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봤다. 경찰의 살수차 운영까지 일일이 시비를 걸고서도 폭력 시위를 막을 길이 검판사의 탁상에서는 보였던 것일까.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사물의 본성’을 무시한 법 적용의 과잉이고 그것이 대부분의 적폐 수사의 본질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