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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도 경사노위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자[기고/김덕호]

입력 | 2023-05-31 03:00:00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우리나라 노동시장 안에서 근로자 간 격차가 심하다. 지난해 전체 근로자 중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 비율은 9.2%, 반대로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비율은 31.1%였다. 두 집단 간 월평균 임금은 2.7배, 근속연수는 5.9배 차이 났다. 복지 수준을 감안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노동시장이 분절되어 한 번 외부 노동시장으로 밀려나면 아무리 교육훈련을 받아도 내부 노동시장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 어렵다.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이다.

정부는 올 초 이 문제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노동계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에 경사노위는 전문가 중심의 연구회를 구성하여 논의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그 원인이 다양하고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 법제와 관행 때문일 수도 있고, 노동 법제를 개정하면 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지는 정책의 딜레마 때문일 수도 있다. 들여다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경사노위는 우선 세 가지 과제를 논의하고 있다.

첫째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무 제공자의 보호 방안이다.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면서 ‘데이터 라벨러’처럼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고용 관계와 계약 관계가 불분명하다. 다행히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법의 모든 규정에서 배제된다. 유럽연합(EU)은 2019년 유사 근로자 개념을 도입하여 이들을 보호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둘째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적용 문제다. 현행법은 일부 조항을 빼고는 원칙적으로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해고와 휴가, 휴일뿐만 아니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근로시간 문제도 이들에겐 남의 이야기다. 노동법이 근로자를 보호하는 쪽으로 개정될수록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는 더욱 차별을 받게 되는 셈이다. 당위적으로는 모든 근로자가 차별 없이 기본적 근로조건을 보호받는 것이 마땅하나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사업주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파견제도다. 파견근로자 권익 보호를 위해 1998년 제정된 파견법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입법 취지를 달성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파견 업종의 제한으로 사내하도급 사용사업장에 진성도급과 위장도급이 혼재하고 도급과 파견의 구별이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현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사내하도급뿐만 아니라 파견 영역에서도 임금의 중간 착취, 고용 불안, 차별 등 열악한 근로조건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쟁점들은 전문가 수준의 논의로 매듭지어질 사안이 아니다. 연구회의 논의 결과가 나오면 경사노위에서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쟁하길 바란다.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주체들 간에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화의 장으로 나올 때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는 접어두고 오길 당부한다. 대화를 가로막고 대안을 찾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합의가 안 되더라도 좋다. 문제를 모두 드러내놓고 공론화하는 것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다. 미래가 달린 문제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