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6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재투표에 부쳐졌으나 재석의원 289명, 가결 178표, 부결 107표, 무효 4표로 끝내 부결되며 폐기 됐다. 이날 본회의에 참석한 대한간호협회 회원이 표결을 지켜보며 아쉬워 하고 있다. 2023.5.30/뉴스1
간호법은 의료계의 갈등만 불러온 채 폐기된 셈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땜질식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직역별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보건의료 직역 간 업무 범위 명확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간호법 제정안’ 재투표 부결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5.30/뉴스1
간호법은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했다. 의료 질 향상 등을 도모해,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기록상 제정 노력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77년이었고 국회 안에서는 2005년 4월 김선미 열린우리당 의원이 ‘간호사법’을, 그해 8월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이 ‘간호법’을 각각 대표발의하며 처음 거론됐다.
21대 국회 다수당인 야당 주도로 본회의까지 빠르게 오르게 된 간호법의 핵심 쟁점은 명시돼 있던 ‘지역사회’ 문구였다.
대한간호협회는 ‘지역사회’ 문구가 고령사회 돌봄 수료를 고려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간호법 반대 측은 “장기적으로 간호사의 단독 개원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간호협회는 부결 직후 “62만 간호인, 시민들과 함께 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심판하겠다”면서 21대 국회 임기 내에 간호법 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재투표 부결에 맞서 준법 투쟁 수위를 높이는 등 추가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 간협은 16일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뒤 서울 광화문에서 규탄집회, 의료현장 준법투쟁 등을 벌여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리는 진료지원인력 현장 간담회에 참석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피켓을 든 간호사들 앞을 지나고 있다. 2023.5.16/뉴스1
이번 논쟁으로 간호사 처우 개선, 직역 간 업무 범위 명확화, 의과대학 정원 확대, 지역사회 의료·돌봄 서비스 확충 해결 요구가 거세졌다.
다만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예산 투입을 하거나 법제화 등 실행력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의사 일부 의료행위를 대신하며 범법 행위를 하게 된 PA(진료 지원인력) 간호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건의료 직역 간 업무 범위 명확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의사 수도 늘려야 하고 의대 정원 확대나 방문형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려면 의사단체와 복지부 간 협조 및 참여도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무상임이사를 지낸 이평수 전 차의과학대학교 보건의료산업학과 교수는 “의료법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때”라며 “해결책 없이 땜질식으로 손만 본다면 갈등은 봉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료관리학 교수 역시 “업무 범위를 정하는 법과 제도는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모든 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자기 직역 업무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배타적으로 각 의료인이 자기 업무를 정하면 국민은 좋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다. ‘최적의 대안이 아니다’로 회피할 게 아니라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정치권도 갈등을 정쟁의 불쏘시개로 쓰면 안 된다. 여당도, 야당도 문제”라며 “국회는 간호법 갈등을 더 나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