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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서 좌파교육 퇴출” 2년만에 美 전국구 부상

입력 | 2023-06-01 03:00:00

美 대선주자 인물탐구 〈5〉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공화당)
하버드 MBA-칼라일 CEO 출신
민주당 거물 前주지사 꺾고 ‘이변’… ‘보수 적자-문화전쟁 투사’ 이미지
지지율 답보 디샌티스 대안 부상… 짧은 정치 경력은 약점으로 꼽혀




“비판적 인종이론(CRT·critical race theory)은 학생에 대한 ‘정치적 세뇌’다.”

최근 미국 정치매체 액시오스 등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도한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57·사진)가 지난해 1월 15일 취임 당일 한 말이다. 그는 이날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의 인종차별은 차별을 조장하는 각종 사회 체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CRT 학습을 금지시켜 주목받았다.

“좌파가 잘못된 역사 교육으로 아이들을 선동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와 “학생들도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CRT는 낙태, 이민 못지 않은 미 보혁 갈등의 핵심 의제가 됐다. 곳곳에서 CRT 교육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있지만 행정명령으로 금지한 주지사는 그가 최초다.

이를 통해 얻은 보수 적자(嫡子), 문화전쟁 투사 이미지는 정치인 영킨의 최대 자산이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력한 당내 경쟁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지지율이 답보 상태를 보이면서 최근 디샌티스 주지사 대신 그를 ‘트럼프 대항마’로 키우려는 보수 세력이 적지 않다.

그는 공화당 주류가 선호하는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자신을 교차시킨 동영상을 지난달 18일 트위터에 공개하며 “미국적 가치로 새 시대를 열겠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많은 이의 인생을 바꿨고 이제 우리 차례”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의 출마 선언으로 보고 있다.

● 정계 입문 2년 만에 ‘전국구’ 부상

그는 1966년 버지니아 주도 리치먼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농구 장학금을 받으며 텍사스주 라이스대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1995년 칼라일 평직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회사의 성장과 함께 개인 재산도 급증해 4억4000만 달러(약 5720억 원)를 보유했다. 독실한 개신교도이며 부인과 네 자녀가 있다.

그는 2021년 11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고 상대는 이미 버지니아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 거물 테리 매콜리프였다. 여론조사에서는 매콜리프 전 주지사의 낙승이 예상됐고 현직 대통령 바이든까지 매콜리프 지지 유세에 나섰지만 결과는 영킨의 깜짝 승리였다.

그는 주지사 선거 때도 교육 의제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 주내 최고 부촌 라우든카운티에서 CRT 교육을 두고 찬반 측 학부모가 대립해 일부 학부모가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부 교육감이 성적 우수 장학금 지급에 소홀하거나 학내 성폭력을 은폐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하면 교실에서 CRT를 없애겠다. 학교를 정상화하겠다”는 그에게 보수층 지지가 쏠렸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성난 학부모와 트럼프 지지자를 모두 만족시켰다”고 평했다.

● ‘덧셈의 정치’ 주장

그는 2024년 대선에서 야당 공화당이 집권에 성공하려면 당내 화합부터 이뤄야 한다며 보수 주자들이 협력하는 ‘덧셈의 정치’를 외친다. 서로를 향해 날 선 말을 퍼붓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디샌티스 주지사를 모두 두둔하며 둘의 중재자 노릇을 할 뜻도 내비쳤다.

그는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제조업 부활 정책은 훌륭했다”고 호평했다. 디샌티스 주지사와는 미 대기업을 서로의 주에 유치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라고 했다. CNN 인터뷰에서는 ‘민주당 텃밭’ 버지니아에서 공화당 간판을 달고 주지사로 뽑힌 자신이 “더 많은 무소속 유권자와 민주당원을 모을 수 있다”며 자신의 본선 경쟁력을 은근히 강조했다.

기업가 출신답게 그는 감세를 통한 성장을 강조한다. 다만 교육과 세금 의제를 제외하면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공화당 내 극우 강경파보다 유연한 편이다. 특히 성폭력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낙태는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