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숨진 우크라이나인 일가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러시아군 점령지 밖으로 피난가던 중 피격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상은 업로드 직후 자동으로 삭제됐다.
영상을 올린 우크라이나 영상감독 이호르 자카렌코 씨(46)는 1일(현지 시간) 영국 BBC에 “민간인을 해치지 않았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반박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영상감독 이호르 자카렌코 씨. 자카렌코는 수도 키이우 출신으로 전쟁 전에는 여행사를 운영하며 촬영감독으로도 일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는 한 가지 일을 더 한다. 자카렌코는 우크라이나에 취재 오는 외국 언론인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이르핌, 이줌, 도네츠크 등 격전지를 다녔다. 사진 출처 이호르 자카렌코 인스타그램
○ “AI, 인권침해 증거라고 구분 못해”
자카렌코의 주장을 검증하고자 BBC 취재팀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여러 개 새로 만든 후 해당 영상을 업로드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에서는 계정 4개 중 3개에 올라간 영상이 업로드 후 1분 안에 삭제됐다. 유튜브에는 미성년자가 볼 수 없게 나이 제한을 걸어 업로드했지만 3개 계정에서 모두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지워졌다. 취재팀은 “전쟁 범죄의 증거가 포함된 영상이니 복원해달라”고 이의제기했지만 기각됐다고 했다. 자카렌코가 지난달 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폭격으로 유리창이 전부 깨지고 불에 그을린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다. 자카렌코는 팔로워가 6만 명에 육박하는 이 계정에 “도네츠크(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글과 함께 이 사진을 올렸다. 그는 현재도 사진과 영상으로 우크라이나전 상황을 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이호르 자카렌코 인스타그램
○ 전쟁범죄 기소에 활용 “보존 필요”
문제는 전쟁 범죄 규명에 소셜미디어 콘텐츠가 증거로 채택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이나 사진을 근거로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이 2020년 기준 적어도 10건(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으로 집계됐다. 2017년 스웨덴 법원에서는 시리아인 남성이 전쟁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시리아인 하이삼 오마르 사칸은 2016년 스웨덴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스웨덴 당국이 발견한 한 온라인 영상에 덜미를 잡혀 기소됐다. 2013년 뉴욕타임스(NYT)가 올린 영상에는 시리아 정부 관계자 7명이 반군에 처형당하는 모습이 담겼는데 사칸도 반군 측에서 처형에 참가했다. 한 유럽 국가 조사관은 “직접 가지 못하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조사할 때 소셜미디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HRW에 말했다.
이지윤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