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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우크라전 사진 지우지 말라” vs “예외 안된다” 논쟁

입력 | 2023-06-01 15:58:00


지난해 상반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숨진 우크라이나인 일가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러시아군 점령지 밖으로 피난가던 중 피격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상은 업로드 직후 자동으로 삭제됐다.

영상을 올린 우크라이나 영상감독 이호르 자카렌코 씨(46)는 1일(현지 시간) 영국 BBC에 “민간인을 해치지 않았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반박하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영상감독 이호르 자카렌코 씨. 자카렌코는 수도 키이우 출신으로 전쟁 전에는 여행사를 운영하며 촬영감독으로도 일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에는 한 가지 일을 더 한다. 자카렌코는 우크라이나에 취재 오는 외국 언론인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이르핌, 이줌, 도네츠크 등 격전지를 다녔다.   사진 출처 이호르 자카렌코 인스타그램

소셜미디어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콘텐츠의 폭력성, 선정성 등을 모니터링한다. 자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사용자에게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한다. 자카렌코가 올린 영상이 삭제된 이유다.

자카렌코와 같은 사례들을 두고 현재와 같은 모니터링 방식이 전쟁 범죄 책임 규명에 활용할 자료를 없앤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소셜미디어 운영사가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AI, 인권침해 증거라고 구분 못해”
자카렌코의 주장을 검증하고자 BBC 취재팀은 소셜미디어 계정을 여러 개 새로 만든 후 해당 영상을 업로드했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에서는 계정 4개 중 3개에 올라간 영상이 업로드 후 1분 안에 삭제됐다. 유튜브에는 미성년자가 볼 수 없게 나이 제한을 걸어 업로드했지만 3개 계정에서 모두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지워졌다. 취재팀은 “전쟁 범죄의 증거가 포함된 영상이니 복원해달라”고 이의제기했지만 기각됐다고 했다.

자카렌코가 지난달 2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폭격으로 유리창이 전부 깨지고 불에 그을린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다. 자카렌코는 팔로워가 6만 명에 육박하는 이 계정에 “도네츠크(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글과 함께 이 사진을 올렸다. 그는 현재도 사진과 영상으로 우크라이나전 상황을 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이호르 자카렌코 인스타그램

BBC는 “메타와 유튜브는 폭력적인 영상이더라도 공익을 위해 예외를 두는 경우가 있다고 전해왔지만 자카렌코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기록한 영상이 업로드 즉시 지워지곤 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배경은 AI가 인권 침해 현장이 담긴 영상을 여타 폭력적인 전쟁 영상과 구분하기 못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 전쟁범죄 기소에 활용 “보존 필요”
문제는 전쟁 범죄 규명에 소셜미디어 콘텐츠가 증거로 채택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이나 사진을 근거로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이 2020년 기준 적어도 10건(독일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으로 집계됐다.

2017년 스웨덴 법원에서는 시리아인 남성이 전쟁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시리아인 하이삼 오마르 사칸은 2016년 스웨덴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스웨덴 당국이 발견한 한 온라인 영상에 덜미를 잡혀 기소됐다. 2013년 뉴욕타임스(NYT)가 올린 영상에는 시리아 정부 관계자 7명이 반군에 처형당하는 모습이 담겼는데 사칸도 반군 측에서 처형에 참가했다. 한 유럽 국가 조사관은 “직접 가지 못하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조사할 때 소셜미디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HRW에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상을 삭제하더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셜미디어 운영사는 게시글을 단속할 권리가 있고 운영사가 폭력성이 짙은 영상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스 반 샤크 유엔 주재 미국 국제형사사법(GCJ) 대사는 “해당 정보를 향후 책임 규명에 활용할 수 있게 소셜미디어 운영사가 보존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며 “소셜미디어 운영사는 전 세계 사법조사 기관의 협조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BBC에 말했다.
이지윤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