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태영호 전 최고위원이 사퇴한 빈자리를 채울 보궐선거에 현역 의원은 한 명도 출마하지 않았다. 9일 전국위원회 경선에 나설 최종 후보는 ‘0선’의 원외 인사 3명뿐이다. ‘0선’의 당 대표였던 이준석 정도의 중앙정치 이력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초 재선의 현역 의원들이 출마를 저울질했지만 막판에 모두 손사래를 쳤다. 일반 당직도 아니고, 집권여당 지도부를 뽑는 선거 아닌가. 당내에선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최고위원 하마평에 올랐던 이용호 의원은 “정치는 소신도 필요하지만 눈치도 있어야 된다”며 “그런데 눈치를 살펴보니까 소위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내 분위기를 의식해 불출마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당내 핵심 의제 결정은 최고위원회의가 아닌 다른 데서 한다”며 당내 ‘5인회’를 지목했다. 5인회 면면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김기현 대표를 포함한 전략회의 멤버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 의원이 최고위원이 ‘들러리’라면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김 대표는 “5인회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여당 최고위원의 무게감도 많이 낮아졌다. 잇단 실언 논란 때문에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당원권 1년 정지’ 중징계를 받고 내년 총선 공천 대상에서 탈락했다. 태 전 최고위원은 자진 사퇴로 겨우 낙천의 위기만 모면했다. 선출직 최고위원 4명 중 절반이 징계를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그나마 남은 최고위원들은 0선의 원외 인사와 초선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군 정리에 개입한 대통령실의 ‘입김’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역 의원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최고위원이 되더라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성적표도 중요하겠지만 선거는 결국 대통령실이 아닌 여당이 주도해 치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당이 국정 의제나 정책을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현역 의원들이 지나치게 공천에 목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당 운영이 특정 세력에 치우친 건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당 지도부가 이번 최고위원 대진표에 담긴 경고음을 새겨야 할 때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