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한바탕 감기를 앓았다. 집밥이 그리운데 밥 지을 기운은 없고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배달 앱에서 ‘할머니보리밥’을 찾았다. 보리밥과 청국장을 파는 나의 랜선 단골집. 여기 음식은 어릴 적 할머니가 지어준 밥처럼 정성스러운 손맛이 느껴졌다. 먹고 나면 속도 편안해서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배를 쓸어준 것처럼 기운이 났다.
‘집밥 같아요. 진짜 울 할머니 밥상 같아요. 먹다가 몇 번을 기절했나 몰라요.’ 배달 앱에서도 인기 많은 식당이라 리뷰가 많았지만 주인 답글은 없었다. 딱 한 번, 다분히 공격적인 별점 테러와 악성 리뷰에 달린 단호한 답글이 유일했다. ‘저희는 매일 아침 모든 음식을 준비하여 판매합니다. 김치랑 나물도 모두 직접 만듭니다.’ 식당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강단 있는 자부심이 맛의 비결인 걸까? 언젠가 로드뷰로 찾아본 식당은 오래되었지만 깔끔한 외관에 단출한 메뉴가 큼지막하니 완고한 글씨체로 붙어 있었다.
보리밥과 청국장을 시켰다. 고슬고슬한 보리밥에 무생채, 고사리, 당근, 버섯, 콩나물, 취나물, 궁채나물이 양껏 들어 있었다. 특히나 별미인 궁채나물은 여기 보리밥에서 처음 먹어봤다. 오도독한 식감에 토란대 같기도, 고구마순 같기도 한 담백한 맛이 고슬고슬한 보리밥과 뒤섞여 입맛을 돋웠다. 그런가 하면 바글바글 되직하게 끓인 따끈한 청국장 한 숟갈 떠먹어보자면 뭉근하게 속이 데워졌다. 보리밥에 나물들 한데 넣어 청국장 싹싹 비벼선 한 그릇 뚝딱 비웠다. 맛있다. 살 것 같다. 든든한 힘이 차올랐다. 나는 리뷰를 남겼다. ‘할머니보리밥집 할머니 만나보고 싶어요. 보리밥이랑 청국장 먹은 힘으로 내일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스마트폰 너머에 사람이 있다. 청국장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지, 나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만들어본 이는 안다. 매일 아침 식당 문을 열고 재료들을 다듬고 썰고 데치고 볶고 버무리고 끓이고 그릇에 담아내어 보내주는 사람의 손길이 있다. 요리처럼 정직한 정성이 어디 있을까. 덕분에 겨우 배달 음식이 아니라 무려 집밥 한 상을 먹는다. 변치 않는 정직한 정성에 정직한 마음을 전송한다. 모쪼록 힘이 나는 씩씩한 인사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