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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경험한 선박건조금융과 해상보험[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75〉

입력 | 2023-06-02 03:00:0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태어나서부터 나는 배와 함께했다. 우리 집은 동해안에서 3척의 어선으로 수산업을 경영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경호 좌초 사고 후 집안은 수산업을 접게 되었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생계를 꾸리기 위하여 조선소에 수리차 올려진 어선에 페인트 칠을 하는 직업을 택하셨다. 나는 아버지 일손을 돕고자 조선소를 오가며 선박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조선소가 두 군데 있었다. 어선이 두 개의 철로 위에 놓인 큰 나무 뭉치 위로 올라타면 와이어를 감아서 이를 뭍으로 끌어올린다. 나무 뭉치를 풀어주면 배가 바다로 내려갔다. 슬립웨이이다. 1인 조선소도 있었다. 조 목수라는 분이 집에 건조장을 차려서 거룻배를 1년에 4척 정도 만들었다. 담장 너머 조 목수의 집에서 거룻배가 만들어지는 진척 상황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널빤지같이 긴 나무판에 불을 쪼이고 휘어지게 하여 배의 외판을 만드는 작업은 신기했다. 처음에는 나뭇조각에 불과하던 것이 배의 모양을 점차 갖추어 갔다. 완성된 나룻배를 바다에 띄우는 작업이 필요했다. 동네 장정 10명이 모여서 밧줄과 통나무 받침을 이용해 20m 정도 떨어진 바다에 진수시켰다. 학동들은 재미있어 하면서 뒤를 따라갔다.

나는 이제 교수가 되어 선박건조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몇 개의 조선소를 직접 방문하고, 조선소의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는 현장에 서 있으면 어릴 적 추억이 오버랩된다. 와이어로 감아서 끌어올리던 방식은 선박이 독에 들어오게 한 다음 물을 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목선이 아니고 철판으로 선박이 건조된다. 블록이라고 불리는 조각을 다른 곳에서 만들어 이동시켜 온 다음 용접하는 방식으로 선박이 건조된다.

내가 중학교 때, 조부님은 수산청의 계획조선으로 철선 한 척을 가지게 되어 수산업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포항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노란 봉투가 우리 집에 날라왔다. 결국 온갖 가재도구에 노란 딱지가 붙었다. 집과 토지가 경매에 들어가자 집안은 온통 비상이 걸렸다. 고모부가 낙찰을 받은 덕분에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계획조선을 하면서 조부님이 소유자로서 내야 할 대금을 내지 않으니까 조선소가 채무변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철선을 담보로 70%는 은행 대출을 받고, 10%는 정부의 지원금일 터이니, 나의 돈 20%만 조달할 수 있었다면 철선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또 있다. 대경호 사건으로 침몰된 선박을 건졌으나, 고철값으로 50만 원을 받았다. 그 뒤로 신조선을 건조하지 못한 것을 보면 대경호는 선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험에 가입했다면 선가에 해당하는 만큼의 대금을 수협공제에서 수령했을 것이고, 보험금으로 다시 선박을 신조해서 수산업을 계속 영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박, 조선, 선박금융에 대한 유년 시절 경험들은 내가 해상법, 선박건조금융법, 해상보험법을 연구하고 강의하는 데 값진 밑거름이 되고 큰 자신감을 불러일으켜준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