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번지는 역전세] 올해 전국 아파트 전세계약 47%가 ‘역전세’ 6만건 계약 중 직전보다 전셋값 하락한 계약 3만건 육박 집주인, 내줄 돈 마련 막막… 세입자는 이사 못갈까 불안
역전세난이 현실화하면서 올해 1∼4월 전국 아파트에서 전셋값 하락으로 집주인이 추가로 돈을 마련해 세입자에게 내준 전세보증금이 2조5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주인이 아파트 1채당 평균 8400만 원을 기존 세입자에게 내준 것이다. 역전세난이 이미 시작된 가운데 지방 아파트와 신축 빌라가 하반기(7∼12월) 역전세난의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 온상으로 지목됐던 신축 빌라도 역전세난 심화로 추가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동아일보 분석 결과 올해 말까지 전세 계약이 다가오는 신축 빌라(2020년 이후 준공 기준) 77.5%는 2년 전 입주 시 가격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불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1년 5∼12월 전국 빌라 실거래 10만6728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이들 신축 빌라는 전세금을 채당 약 5994만 원 내려야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6월 이후 역전세난이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역전세, 대구 82% 인천 61%… 집주인들 평균 8400만원 돌려줘
“전세금 1억 낮춰도 세입자 못구해”… 집주인들, 대출도 어려워 전전긍긍
전셋값 고점 2021년 계약 잇단 만기
지방 중심 역전세난 더 심해질 우려
정부, 보증금반환용 대출 완화 추진
전셋값 고점 2021년 계약 잇단 만기
지방 중심 역전세난 더 심해질 우려
정부, 보증금반환용 대출 완화 추진
대구에서 임대사업을 하는 한모 씨(43)는 지난달 전세 계약이 끝난 대구 달서구 아파트(전용 59㎡) 전셋값을 2억8000만 원에서 1억 원을 낮춰 세입자를 겨우 구했다. 기존 보증금에서 부족한 돈은 적금을 깨고 추가 대출을 받았다. 더 큰 문제는 다음 달 전세 시세가 2년 전 2억60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내린 구축 아파트 전세 계약이 또 끝난다는 점이다. 에어컨, 신발장, 타일 등을 모두 바꿔주겠다는 광고까지 했지만 두 달째 세입자를 못 구하고 있다. 그는 “15년 넘게 임대사업을 하며 전세금 반환에 문제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은행대출이 어렵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가 대규모 입주를 앞두고 있는 등 주택 공급이 많은 지방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셋값이 고점이었던 2021년에 맺은 계약들의 만기가 올해 하반기(7∼12월)부터 도래하기 시작해 앞으로 역전세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지방 아파트 역전세 심화
문제는 역전세 현상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셋값이 고점이었던 2021년 5∼12월 전세 계약된 전국 아파트가 44만8347채로 이들 아파트의 만기가 순차적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임대차3법이 시행된 2020년 7월 전세실거래가지수는 110.3에서 2021년 5월 121.4로 급등해 같은 해 말까지 123∼127을 유지했다.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것도 역전세난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하반기 전국 입주물량은 23만1370채로 전년 동기(20만9172채) 대비 2만2198채가 더 많다. 특히 지방 분양 물량이 11만8805채로 전년 동기 대비 2만4534채 늘었다. 역전세가 심한 대구는 올해 하반기 물량만 1만7626채로 전년 동기보다 4000여 채 가까이 늘어난다.
● 정부 “임대인, 전세금 반환 보증 대출 완화 검토”
정부는 역전세가 심화되자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전세금 반환 보증과 관련된 대출에서 선의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며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부분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대출규제 완화는 필요하지만 ‘선의의 집주인’을 가려낼 장치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담보 여력이 있어도 추가 대출을 못 받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데 담보 범위 내에서 규제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며 “집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역전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추가 대출 규제는 건전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셋값이 추가 하락할 수도 있는 만큼 제한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역전세전세 시세가 직전 전세 계약 때보다 떨어져 신규 세입자에게 받을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