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복합문화공간 타이쿤에서 열리고 있는 호주 출신 작가 패트리샤 피치니니의 ‘HOPE’ 전시 전경.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홍콩은 아트페어와 갤러리, 그리고 경매까지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생각되곤 합니다. 수 년 전 아트페어 취재를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가, 정작 좋은 미술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은 없다는 걸 알고 당황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홍콩을 가보니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품을 볼 수 있는 ‘홍콩고궁문화박물관’과 현대미술관인 ‘M+’가 서구룡문화지구에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서구룡문화지구는 홍콩을 아시아의 문화적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이 시작된 곳입니다. 최근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면서 새로운 관광지로 떠올랐습니다.
“M+, 아시아의 첫 글로벌 뮤지엄”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M+ 미술관.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 부관장은 M+가 “시각 미술뿐 아니라 건축·디자인, 영상 등 세 분야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시아 최초의 현대 시각 문화를 다루는 글로벌 미술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직접 찾은 M+ 미술관은 영국 테이트 모던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헤르조그&드뫼롱이 맡아, 인상적인 전시 공간이 돋보였습니다.
M+ 미술관의 울리 지그 컬렉션전.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흥미로운 것은 ‘시각 문화’에 관한 미술관이기 때문에, 홍콩 영화 황금기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것도 수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특정 국가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는 홍콩에서 시작해 중국 전체를 보고, 그 후 동북아, 동남아, 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도련 M+ 부관장.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어릴 때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예고에 가라’는 말도 듣곤 했어요. 그러다 미술사 수업에서 ‘이미지를 언어로 바꿀 수 있다’는 게 마술처럼 느껴졌죠.”
그러나 아시아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학자의 길이 외롭다고 느끼던 차에 우연히 미술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면서 큐레이터의 길을 가게 됩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워커아트센터, MoMA를 거쳐 M+까지 오게 된 것이죠.
그는 글로벌 미술계로 진출하고 싶은 젊은 예술가·큐레이터들에게 “중요한 기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또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감옥을 개조한 미술관, 타이쿤
타이 쿤의 현대미술 전시 공간 입구.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경매장과 갤러리의 예쁘고 얌전한 작품을 보다, 타이 쿤에서 파치니니의 조각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각을 자아내는 조각들은 독특한 시각 언어로 ‘모성’과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과거에는 여성 감옥이었다는 점도 특별했죠.
패트리샤 파치니니 개인전 ‘HOPE’의 전경.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홍콩의 미술 기관에 대해서도 물었는데요. 베르거는 “한국에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 등 여러 기관이 있지만 국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며 “M+를 비롯한 홍콩의 기관들은 향후 아시아 내 여러 지역과 연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다만 한국 미술계에도 경험이 많고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좋은 전시를 선보인 아트선재센터처럼 되는 것이 타이쿤의 목표”라며 “문화적으로 봐야할 차세대 도시를 누군가 물으면 서울이라고 답한다”고 했습니다.
이유에 대해 묻자 “한국에서는 ‘대안공간 루프’를 비롯한 비영리 공간에 대한 지원이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이어졌다”며 “공간 중심인 홍콩보다 한국이 더 시스템을 잘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패트리샤 파치니니의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에서. 오른쪽이 토비어스 베르거입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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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