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지러운 방이 뇌를 피곤하게 한다
할 일이 많을 땐 주변을 잔뜩 어질러 놓고도 나중에 한 번에 몰아서 치우겠다고 미루기 쉽다. 하지만 청소하는 시간을 아끼는 것보다 잠시라도 시간 내서 주변을 깨끗하게 치운 뒤 할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오히려 집중이 필요한 공부나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책상을 치우는 행동은 주의 집중 효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 대비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주위를 둘러보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지는 않은가?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요소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뇌를 피로하게 만든다.
잡동사니 분류하느라 지쳐가는 뇌
잡동사니로 어지러운 공간에 있으면 뇌는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일한다. 뇌에 시각 자극이 계속 들어오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이를 해석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빈 컵, 과자봉지, 스마트폰, 필기구, 각종 서류 등이 있는 너저분한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뇌에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물을 인식하고 범주화해 눈에 보이는 정보가 지금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 걸러낸다. 별거 아닌 작업 같아도 이로 인해 뇌가 피곤해지고, 업무 처리 효율이 떨어진다.사빈 카스트너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신경과학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시각적 자극과 주의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도시의 거리 모습이나 자연 풍경이 담긴 사진 2056개 중 일부를 무작위로 보여 줬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진에 자동차나 사람이 있는 경우를 빠르게 분류하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사진을 보면서 △자동차는 있지만 사람은 없는 경우 △사람은 있지만 자동차는 없는 경우 △둘 다 없는 경우로 나누는 작업을 했다.
사빈 카스트너 교수 연구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사람이나 자동차가 있는 사진을 구별하는 과제로 보여준 사진. 네이처(nature)
연구팀은 우리의 뇌가 복잡한 시각 정보를 빠르게 감지해 범주화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쓸모없는 정보를 해석하느라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카스트너 교수는 “잡동사니는 시각적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간단한 작업에도 뇌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며 “상충하는 자극이 많을수록 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걸러내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평소 한눈 잘 판다면…꼭 청소부터 해야
이곳저곳에 자주 한눈을 파는 습관이 있다면 잡동사니 청소는 더욱더 필수적이다. 존 맥도날드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한눈을 잘 파는 사람일수록 시각적으로 정신없는 요소를 제거해야, 인지 부하를 줄이고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에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시각 자극을 무시하는 메커니즘이 내장돼 있다. 이는 우리가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극의 정도가 강하지 않으면 이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만, 자극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이를 무시하기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평소 한눈을 잘 파는 사람이라면 강한 자극의 유혹에 더욱 취약하다.
눈에 띄는 알록달록한 메모지 등은 시선을 빼앗아 주의력을 떨어트리는 요소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만 연구팀에 따르면 주변 환경에 따른 집중력 저하 여부에는 개인차가 있다. 어떤 사람은 산만한 환경에서도 필요한 곳에 잘 집중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매우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선을 다른 곳에 잘 빼앗겨 집중에 방해받은 경험이 많다면, 최대한 말끔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집 치우니 뭐든지 할 수 있겠는걸?”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 외에도 삶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청소를 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주변 공간을 정리하면, ‘이 공간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공간뿐 아니라 상황에 대한 통제력도 생겼다고 느끼게 된다. 모든 물건이 내 뜻대로 지정된 위치에 놓이게 되면 이를 효율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할 때 물건을 빠르게 찾을 수 있어 실제 효율도 높아지게 된다. 심리 전문가들은 자신의 공간을 깨끗하게 치우는 것은 곧 자신의 정신세계를 말끔히 정리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심리학과 건축·환경설계를 접목해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콜린 엘러드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교수도 공간에 대한 통제력이 삶에 대한 통제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저서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 대한 통제력을 얻음으로써 주변 환경 개선을 시도한 인도 뭄바이의 최대 빈민가 다라비에 주목했다. 다라비 주민들은 거주지를 정비해 나가면서 상업지구를 조성하게 됐고, 빈민가 탈출 노력을 하게 됐다. 열악한 집의 환경을 고치자 상황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내 마음대로 내가 지정한 곳에 물건을 두면 공간에 대한 장악력과 통제력이 생기고, 이런 느낌은 내 삶에 대한 통제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 동아일보 DB
최고야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