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가 커지면서 세입자들을 지원하는 법까지 통과됐지만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逆)전세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해 들어 맺어진 아파트 전세계약 중 절반 가까이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 하락분을 내줘야 하는 거래였다. 전셋값이 폭락한 지방 아파트, 신축 빌라들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올해 1∼4월과 2년 전 같은 기간 이뤄진 전국 아파트 전세계약을 동아일보 취재팀이 비교 분석했더니 거래의 47%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하락분으로 내준 전세금은 총 2조5000억 원, 한 채당 평균 8400만 원꼴이다.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집주인이 돈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도 못 가고 발이 묶인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방 아파트들은 사정이 더 안 좋다. 대구와 세종시 아파트의 82%, 67%는 전셋값이 2년 전보다 하락했다. 사기 피해가 집중돼 전셋값이 폭락한 신축 빌라들도 상황이 심각하다. 올해 하반기에 전세 기간이 끝나는 전국의 신축 빌라 10채 중 8채는 집값에 비해 전셋값이 너무 높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금 반환보증에도 가입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민경제 파탄과 임대차 시장 혼란을 막으려면 집주인이 전세금 하락분을 돌려줄 수 있도록 대출을 늘려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세금 반환 목적이 분명한 경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간신히 안정세를 찾은 가계대출이 다시 폭증하거나, 금융회사 부실이 커지는 일이 없도록 금융당국의 치밀한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