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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살인해 보고 싶었다”… ‘괴물’ 키운 공동체의 책임 돌아볼 때

입력 | 2023-06-03 00:00:00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정유정은 지난달 26일 중고로 구입한 교복 차림으로 부산 금정구 소재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자신이 중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잠시 대화를 나누다 흉기로 살해했다. 2023.6.2/뉴스1


23세 여성 정유정이 막연히 “살인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뒤 치밀하게 대상을 골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지고 있다. 그는 과외 중개 앱에서 영어 과외를 원하는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를 고른 뒤 중학생으로 위장해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여행용 가방에 넣어 버렸다가 발각됐다.

정유정은 부모와는 오래전 떨어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고교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특정한 직업 없이 영화나 TV의 각종 범죄물에 심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부모 없이 자라고 영화나 TV의 각종 범죄물에 심취했다고 해서 다 범죄자가 되진 않는다. 정유정의 경우 심리적으로 가족과 사회로부터 거의 완전히 고립돼 버렸다는 특징이 있다.

정유정이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이코패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검찰 송치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사이코패스로 태어나도 가족과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자라면 ‘괴물’이 되는 걸 피할 수 있다. 반대로 사이코패스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가족과 사회의 유대가 끊어져 사이코패스처럼 변하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있다. 정유정은 현실과 유리된 채 혼자 생활하면서 실제와 가상의 경계가 흐려질 정도로 영화나 TV의 각종 범죄물에 빠져든 듯하다.

경찰이 공개한 정유정의 사진에서 묻지마 살인 충동을 읽어낼 사람은 별로 없다. 과거 농촌 사회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있다 하더라도 서로 잘 알고 지내 미리 감지가 됐다. 도시에서는 가족과의 유대가 원활하지 못하고 친구도 없고 직장을 통한 사회와의 유대마저 갖지 못한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주변에서 이를 알아챌 방법이 없다. 극단적인 익명성에서 비롯되는 범죄의 우려는 가족 관계의 회복,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사회와의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회복함으로써만 줄일 수 있다.

근래 들어 10대 사이코패스 범죄가 증가하는 현상을 고려하면 ‘영화나 TV의 각종 범죄물에 심취했다’는 정유정의 말도 흘려듣기 어렵다. 한국 영화는 A급 영화부터 폭력성과 잔인성이 지나치다. 일부 TV 프로그램은 범죄를 소재로 삼아 모방이 가능할 정도로 자세히 소개한다. 청소년만이 아니라 성인조차도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잊을 정도다. 도덕과 법은 문화를 통해 뿌리내린다. 문화 속에 도덕과 법 감정이 희석되는 걸 가장 우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