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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범 혀 깨문건 무죄” 판례는 충분…최말자씨 재심의 문 열릴까

입력 | 2023-06-03 07:32:00

대법원, 1989년 혀 뜯은 사건 '정당방위' 인정
'황령산 혀 절단' 사건도 정당방위로 불기소
최말자씨 재심 개시 여부, 대법원 최종심 앞둬




18세이던 시절 성폭행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폭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최말자(77)씨가 재심을 청구한 가운데, 정당방위로 인정된 과거 유사 사건 판례가 다수 확인돼 주목받고 있다.

3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989년 8월 혼자 귀가 중인 여성이 자신에게 달려들어 성폭행을 하고 강제로 키스를 한 남성의 혀를 물어뜯은 사건을 두고 신체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경북의 한 읍내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젊은 남성 2명이 혼자 집에 가고 있는 피해 여성을 발견하고 뒤를 밟다가, 골목길에 진입하자 뒤에서 달려들어 양팔을 붙잡아 꼼짝 못하게 한 뒤 넘어뜨리고 음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사건이다.

피해 여성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하다가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는 남성 1명의 혀를 물어뜯어 전치 4주의 설절단상을 입혔다.

최근에도 강제추행에 맞서 혀를 깨물어 절단한 혐의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황령산 혀 절단’ 사건을 꼽을 수 있다. 피해 여성은 2020년 7월 부산 황령산 산길에서 강제추행에 맞서 상대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혐의를 받았으나, 정당방위가 인정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반면 가해 남성은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반면 최씨는 1964년 강간 시도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에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졸지에 ‘상해 가해자’가 됐다.

최씨는 중상해죄가 인정돼 부산지법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는 정작 성폭력 미수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로 최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최씨는 5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난 2020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재심 요건인 검사의 위법 행위를 입증할 객관적이고 분명한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고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재심을 기각했다. 최씨의 재심을 받아들일 경우, 과거의 법감정으로 내렸던 모든 판결에 대해서도 재심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씨에 대한 재심 여부는 대법원 최종심만 앞두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잘못된 판결이라면서도 재심 개시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개인에 대한 국가 폭력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본다면 재심 개시도 가능하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심 개시 결정은 법리적으로 증거의 신규성이나 명백성이 있을 때 가능하다”며 1·2심 판단에 법리적 문제는 없다고 전했다.

다만 “국가 폭력 사건에서 위법성 등을 인정해 재심을 결정했듯 공권력에 대항할 수 없었던 개인의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들여다 본 뒤 재심 청구 개시를 인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재심 개시만 된다면 본안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