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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쓰고, 잘 버리고, 재활용하는 ‘플라스틱 생태계’ 만든다

입력 | 2023-06-05 03:00:00

[환경의 날] 오늘은 제28회 환경의 날
바다 생물 멸종시키는 플라스틱, 인체에 차곡차곡 쌓여 문제 일으켜
국내 폐플라스틱 연간 약 1213만t… 1인당 일회용컵 570개 쓰는 셈
유럽연합, 비닐-컵 등 판매 금지, 환경부도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단계별로 평가-제도 강화해 관리




영국 링컨셔 바닷가에서 2년 전 길이 4.5m 정도의 어린 범고래가 사체로 발견됐다. 파도를 타고 쓸려온 것으로 보이는 범고래를 조사했더니 위 안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 있었다. 돌고래는 부패했는데도 플라스틱은 그대로 남아 있어 충격을 줬다. 범고래는 펭귄부터 상어까지 잡아먹어 킬러 고래(Killer Whale)로 불린다. 그런데 플라스틱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2018년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플라스틱 때문에 범고래가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범고래만 위기에 처한 것일까. 지난해 세계자연보호기금(WWF)과 호주 뉴캐슬대 공동 연구팀은 전 세계 인구 1인당 매일 5g의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미세 플라스틱은 크기가 5㎜ 이하라 하수 처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는다. 하수구를 통해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해조류나 생선 섭취를 통해 인간의 몸속에 축적된다. 모르는 사이 내 몸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셈이다.


플라스틱 소비량부터 줄여야

플라스틱은 가볍고 단단해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실제 국내 플라스틱 소비량을 보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우리 국민이 쓰는 일회용 컵과 빨대만 세어도 1인당 연간 400억 개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연간 일회용 컵 570개, 빨대 206개를 쓰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동안 배달과 일회용품 사용이 더욱 늘어나면서 생활용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2019년 418만 t에서 2021년 488만 t까지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17.7%나 증가했다.

플라스틱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각국은 플라스틱 관련 규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플라스틱 비닐·음식 용기·컵 등 10개 품목 판매를 금지했다. 뉴질랜드는 지난해 10월부터 특정 일회용품이나 재활용하기 어려운 제품은 아예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막대, 폴리스타이렌 및 EPS 스티로폼 음식 포장 용기 및 음료 용기 등이다.

이에 앞서 2019년에는 일회용 봉투, 일회용 비닐 쇼핑백 사용을 금지했다. 중국은 2017년부터 폐플라스틱, 폐금속 등 폐기물 수입을 제한했고 2021년부터는 전국의 식당과 주요 도시의 상점에서 플라스틱 빨대 제공을 금지했다.

지난해 초 유엔환경총회는 2024년 말까지 법적 구속력을 지닌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플라스틱 국제 협약 논의가 본격화되면 생산, 유통, 소비, 수거, 재활용 및 국제 무역 등 플라스틱 전(全) 주기에 걸쳐 단계마다 규제가 이뤄지고 개인 일상과 기업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2022년 ‘자원순환기본법’을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으로 개정하고 탈플라스틱 사회로의 전환에 시동을 걸었다.


탈플라스틱, 정부·기업·지자체·국민 모두 노력할 일

탈플라스틱 사회로 가려면 원칙적으로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제대로 재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 플라스틱 폐기물이 재활용되는 비율은 60%에 머물고 있다.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해 환경부는 △생산 △유통 △소비 △수거 △재활용 단계마다 탈플라스틱 대책을 마련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 현명하게 소비하고, 다시 태어나도록 잘 버리는 ‘플라스틱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먼저, 제품 생산 과정에서 재활용이 쉬운지 등을 평가하는 순환이용성 평가 제도를 강화한다. 현재는 폐기물로 처리되는 순간에만 재활용이 어려운지, 쉬운지를 평가하지만 앞으로는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지, 수리가 편리한지까지 포함해 평가한다.

제품 유통 단계에서는 공산품의 묶음 포장 등 과대 포장을 금지하는 한편 낱개 포장이 많은 농산물의 친환경 포장을 유도하기로 했다. 택배나 배달 용기도 과대 포장 기준과 검사 방법을 마련해 관리한다.

소비 단계에서는 일회용기를 다회용기로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지난해 6월부터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시범 도입됐다. 현재 대형 슈퍼마켓에선 일회용 비닐봉지와 쇼핑백 사용이 금지됐다. 이에 더해 우산 비닐 등 금지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일회용기를 사용하는 카페나 식당에 대여 및 세척 비용을 지원해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면서 다회용기 사용을 유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수거 단계에서는 단독주택 단지에 ‘재활용 동네마당’, 농촌 지역에 폐비닐 공동 집하장을 설치해 재활용 분리배출이 쉽도록 한다. 광학 선별기나 로봇을 도입해 재활용품 선별 시설을 자동화한다. 재활용 단계에서는 기업의 플라스틱 활용 원료 및 연료화 기술 개발을 유도하고 페트병 생산자가 일정 비율 이상을 목표로 정해 폐플라스틱 재생 원료를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환경의 날 ‘플라스틱 줄이기’ 행사

경기 포천시의 한 재활용품 수거업체 현장 모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동안 배달과 일회용품 사용이 더욱 늘어나면서 폐플라스틱 소비량이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발생했다. 동아일보DB

5일은 제28회 환경의 날이다. 올해 ‘환경의 날’ 슬로건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우리가’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 생태계 변화 등 환경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 모두의 실행과 노력으로 탄소중립을 실천해 기후변화에 대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날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리는 환경의 날 기념식에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행사가 진행된다.

‘쓰.확.행(쓰레기를 줄이는 확실한 방법)’ 카드지갑 만들기, 자투리 가죽을 활용한 가방참(키링) 만들기 등 재활용 체험 부스를 운영한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환경의 날을 계기로 기업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녹색경영·녹색투자를 시작하고, 개인은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고 다회용기, 재활용품 사용을 늘리는 생활 속 변화를 시작해 달라”고 당부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