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캐논 슛을 터뜨린 뒤 환호하는 황보관. 동아일보 DB
고교 때 축구 선수를 하면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는 “공부보단 축구가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고교 때 축구를 꽤 잘했지만 프로 팀들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1학년 때 서울대 축구부 ‘서울대 네이마르’로 불리던 그는 2학년이던 2021년 테스트를 통해 4부 리그 노원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지난해까지 아마추어 선수로 뛰었다. 그리고 공부와 운동을 병행한 끝에 마침내 경남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대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프로축구 선수는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58)이다. 그가 서울대에 입학한 과정은 유준하와는 달랐다.
당시 체고 재학생들은 주말이면 외박을 받았다. 시골에서 올라온 황보 본부장은 갈 곳이 없었고, 숙소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그는 “그렇게 1년쯤 하다 보니 10등 안에 들어 있더라. 공부가 잘 되고 인정을 받으니까 운동까지 덩달아 더 재미있어졌다. 그렇게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하면서 서울대까지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50대 후반이 요즘도 여전히 선한 인상의 황보관 본부장. 그는 요즘 커피와 와인에 푹 빠져 있다. 이헌재 기자
황보 본부장은 대학교 4학년 때 국가대표 2진으로 뽑혀 남미 원정에도 동행했다. 그 대회에서 골을 넣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1988년 프로 팀 유공 코끼리에 입단까지 하게 됐다. 그리고 프로 첫 해 7골-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왕에도 뽑혔다. 여세를 몰아 국가대표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황보 본부장은 “당시 ‘서울대 나온 애가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는 시선이 많았다. 내게는 큰 동기부여가 됐다. 훨씬 더 독한 마음으로 뛰고 또 뛰었다”며 “별볼일없던 선수였던 내가 발전하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어, 정말 되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의 축구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다.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전반 후반 최순호가 살짝 밀어준 공을 오른발로 강하게 차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시속 114km가 나와 당시까지 월드컵에서 기록된 가장 빠른 슈팅이었다. ‘캐논슈터’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즈음이다. 황보 본부장은 “사실 직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그때도 최순호 선배가 밀어준 공을 프리킥 골로 성공시켰다”며 “그 골 이후 정말 많은 게 바뀌었다. 외국 팀들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스타덤에 올랐다”고 했다. 매일 숙소로 팬레터가 수십 통씩 쏟아졌고, 당시 라디오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던 ‘별이 빛나는 밤에’에도 두 번이나 게스트로 출연했다.
집 인근 호수공원 산책 중 한 컷. 황보관 본부장 제공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FC서울 감독을 역임했고, 2011년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으로 선임돼 행정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현재 맡고있는 기술본부장은 국가대표 선발과 지원, 지도자 등 인재 육성, 한국 축구 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 등을 총괄하는 요직이다.
그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경기 일산에서 살고 있다. 협회가 있는 파주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이 위치한 경기 파주를 쉽게 오가기 위해서다.
정신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건강관리만큼은 거르지 않는다. 파주에 출근할 때는 출근시간을 한 시간 정도 당겨 한 시간 가량 코어 운동을 중심으로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을 한다. 평소 집에서 쉴 때는 아내와 함께 집 인근 호수공원을 한 시간 내외 걷곤 한다.
한 달에 최고 한 번은 공도 찬다. 6년째 서울대 축구부 OB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아무리 간단해 보이는 동호인 축구라고 해도 몸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며 “서울대 축구부의 끈끈함이 있다. 월례적으로 하는 축구 경기와는 별개로 7월과 11월 등 1년에 두 번은 서울대 축구부 OB와 YB가 함께 하는 자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렇듯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현재 체중은 선수 때보다 3kg 정도 많은 70kg대 후반을 유지한다.
자선대회에서 공을 차는 황보관 본부장. 동아일보 DB
이탈리라 포지타노 여행 중인 황보관 본부장. 황 본부장은 포지타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꼽았다. 황보관 본부장 제공
그가 그리는 또 하나의 미래는 ‘제2의 고향’인 오이타에 집을 하나 장만하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 온천 지역인 오이타는 골프와 음식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오이타 부사장으로 재직할 때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를 많이 쳤다. 지금도 70대와 80대를 오가는 실력”이라며 “오이타에 집을 마련하면 그 동안 신세를 졌던 분들을 초대해 좋은 시간을 갖고 싶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인생을 즐기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와이 쥬라식 파크를 여행중인 황보관 본부장. 황보관 본부장 제공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