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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국내파’ 김태한, 퀸엘리자베스 우승…“최선을 다해 즐기니 긴장 안 돼”

입력 | 2023-06-04 17:30:00

202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리톤 김태한. (벨기에유럽연합문화원 제공)


국내에서만 성악을 배운 바리톤 김태한(23)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아시아 남성으로는 사상 첫 1위를 차지했다.

벨기에 브뤼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측은 4일(현지 시간) 결선 진출자 12명 가운데 김태한이 우승했다고 밝혔다. 김태한은 2000년 8월생으로 결선 진출자 중 최연소이자 지난해 9월 독주회를 통해 갓 데뷔한 성악계 샛별이다. 김태한 외에 베이스 정인호(32)도 5위에 올라 입상했다. 한국은 이 두 사람과 바리톤 다니엘 권(31) 등 3명이 결선에 올랐다.

벨기에 왕실이 주최하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1937년 바이올린 부문으로 시작됐다. 성악 부문은 1988년 신설됐다. 2015년 이후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 부문을 매년 번갈아 열고 있다. 쇼팽 피아노 콩쿠르(폴란드) 차이콥스키 콩쿠르(러시아)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 “불어권 무대, 불어로 불러야”

1일부터 사흘간 브뤼셀에서 열린 결선에서 김태한은 2일 무대에 올라 바그너 ‘오 나의 사랑스러운 저녁별이여’부터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중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까지 4곡을 불렀다. 현지 언론 ‘라 리브르 벨지끄’ 클래식 비평가 마르틴느 메르제는 ”김태한의 목소리는 웅장하고 풍부해 멜로디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보기 드문 우아함과 권위를 가진 그는 아름답게 절제돼 감동을 전한다“고 평했다.

록 가수를 꿈꾸다 어머니 권유로 성악을 경험한 뒤 중학교 3학년 때 정식으로 성악을 시작한 김태한은 선화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현재 국립오페라단에 소속돼 있다. 이번 대회 전까지 4년간 바리톤 나건용을 사사했다.

순수 국내파임에도 이번 결선 무대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정확하게 발음해 극찬을 받았다. 특히 ‘오 카를로 내 말을 들어보게’는 원래의 이탈리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불렀다.
“여기(벨기에)가 불어권이기도 하고, 프랑스 요청을 받아 베르디가 작곡한 ‘돈 카를로’ 원래 버전도 프랑스어였어요. 이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서 나중에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이죠. 곡 마지막 소절이 ‘플랑드르를 구해달라’는 의미인데 플랑드르가 벨기에 땅이어서 여러 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외국어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공을 들인다는 그는 “국제음성기호(IPA)상 발음기호 공부가 정석인데 그 또한 (실제 발음과) 다른 부분이 있어서 원어민 노래를 많이 듣고 세세한 부분까지 따라 해보곤 한다”고 말했다. 또 “곡의 음정, 박자뿐 아니라 (가사인) 시를 분석하고 시인에 대해 공부하거나 곡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



● “최선을 다해 즐기니 긴장 안 돼”
독하게 훈련하는 신인 성악가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운 발랄함도 드러냈다. 김태한은 “내 목표는 무대에서 최선을 다 해 즐기고 내려오는 것”이라면서 “이번에도 즐기니 하나도 긴장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사실 국제 콩쿠르보다 국내 콩쿠르가 더 떨린다”며 “한국인이 노래를 워낙 잘하기 때문에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경연에 나간다고 해도 1등할 자신이 없을 정도로 실력자가 많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결선 무대에 진출한 남성 3명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국가별로도 프랑스 캐나다(이상 각 2명)를 제치고 제일 많았다.

김태한은 “연습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걸어다니면서도 연습을 하고, 놀면서도 연습을 한다”며 “이 자리를 빌려 걸어다니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민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수수께끼’ 같은 이른바 K클래식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든 티에리 로로 벨기에 공영방송 RTBF PD는 “젊은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이 나이든 사람의 음악으로만 여겨지던 서양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