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스틸컷. 둘리와 친구들(왼쪽부터 또치, 도우너, 둘리)이 고길동 집 담벼락에 기대어 있다. ㈜둘리나라·워터홀컴퍼니 제공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1980년대 초 군사독재 시절만 하더라도 만화에서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하거나 말대꾸하는 장면을 넣을 수 없었다. 만화 출판 전에 검열을 거쳐야 하는 시기, ‘아기공룡 둘리’ 원작자 김수정 화백은 검열을 피하고자 아이 대신 동물을 의인화하기로 마음먹고, 내친김에 당시엔 잘 쓰이지 않던 공룡 캐릭터를 내세웠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척하지만, 항상 머리에 혹을 달고 혓바닥을 내밀면서 저항의 기운을 뿜어내는 공룡 캐릭터가 1983년 4월 만화 월간지 ‘보물섬’에 등장한다. 검열을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아이들 버릇을 망친다는 이유로 아기공룡 둘리는 연재 당시 학부모·시민단체로부터 불량 만화로 꼽히곤 했다.
요즘 들어선 둘리를 그저 대가리와 몸뚱이가 둥글둥글 친근하기만 한 봉제인형 공룡 캐릭터로 아는 경우도 많지만, TV 및 극장판 애니메이션 속 둘리의 진짜 매력은 바로 이 불온성에 있다. 둘리 탄생 40주년을 맞아 개선된 화질로 재개봉한 둘리 시리즈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에서 둘리의 까칠한 매력이 되살아난다.
오늘날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고길동을 말썽꾸러기 객식구를 받아준 성인군자로, 둘리와 친구들을 민폐를 끼치는 인성 파탄자처럼 해석하는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퍼져 있다. ‘어디 초능력 맛 좀 볼 테야’라는 둘리의 태도는 지금 보면 선 넘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누리꾼들은 영화 ‘부당거래’ 속 명대사(“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를 패러디해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알아요’는 말로 둘리 쪽을 야유한다.
그러나 이건 둘리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재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면 당시의 시대상과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여기서 고길동은 어린이를 자주 손찌검하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린이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폭넓게 또 긍정적으로 용인되던 시절, 때리는 어른을 향해 만화는 둘리의 입을 빌려 ‘어린이를 때리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만화는 어린이를 지지하는 내용으로, 그 시기로선 매우 드물게 폭력과 훈육의 경계를 따지고 든 것이다. 이는 둘리가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극장판 애니메이션 속 둘리는 낚싯대를 회초리처럼 휘두르는 고길동을 향해 “어린이를 때렸으니 큰 병에 걸려 죽을 거예요”라고 저주한다. 그리고 “아저씨 죽으면 이 집은 내 것”이라고 밉살맞게 굴었다가 더 맞고 집 밖으로 쫓겨난다. 둘리는 담벼락에 서서 아저씨는 농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애니메이션은 이 상황을 일종의 유머극처럼 그리지만, 여기에도 뼈가 있어서 뾰로통하고 다정하지 않은 그 시절 어른들을 야유하는 뉘앙스가 있다. 어린이를 지지하는 콘텐츠가 많지 않던 시기엔 앞선 대사들이 다소 과격해 보일지라도, 분명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로하고 이해해주는 기능이 있었을 것이다.
둘리는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공감대가 더 컸다. 둘리와 친구들은 결핍을 품고 있는 어린이들을 상징한다. 고아이거나,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서 쫓겨났거나, 어딘지 모르는 곳에 불시착해 버린 아이들이다.
이들은 주관이 뚜렷하고 고길동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기준을 의심하고 폭력에 민감하다. 동시에 자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엔 또 진심이다. 집안일을 돕고, 서커스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모두 빨리 어른이 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들은 반항과 순종하려는 마음 사이를 오가다가, 나쁘고 착하길 반복하다가 문득 어른이 될 것이다. 지금 보니 고길동도 그렇거니와, 그 시절 모두가 애잔하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