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 가면 깔끔하게 조성된 추모공원이 있다. 그곳에는 전쟁 당시 전사자, 실종자 이름을 새긴 동판 명부가 있다. 명부는 기다란 회랑을 따라 책갈피 형태로 진열되어 있다. 회랑이 끝나는 지점에는 어머니의 상이 자리하고 있다.
어머니는 전쟁터에 나간 후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아들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젖은 눈, 주름진 얼굴, 서글픈 표정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어머니상 둘레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은 항상 우리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리나라 전쟁기념관에는 ‘형제의 상’이 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고지 위 적들을 향해 돌진, 돌진했다. 마지막 정상에서 마주친 적병, 그들은 서로가 형제였던 것이다. 6·25전쟁의 아픔을 한마디로 상징하고 있는 이 형제의 상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제작돼 천만 관객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가 아닌가. 그런데 회복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손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어떤 논리로 정당화할 것인가. 그렇기에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전쟁을 예방하는 강력한 안보를 한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통상 호국이 먼저인가, 보훈이 먼저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는 그 국가의 안보의식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의 경우 월 250만 원 내외의 참전수당을 지급한다. 국민소득은 2배 정도 차이가 나는데 수당 차이는 6배가 넘는 것이다. 우리는 90세 안팎의 6·25 참전 노병들에게 39만 원의 수당이 주어진다. 현역 이등병 월급보다 적다. 이런 노병들을 보면서 누가 과연 자진해서 전쟁터로 뛰어들려 하겠는가. 어떤 여성이 군인 아내의 길을 선택하겠는가.
보훈이 없다면 호국이 있을 수 없다. 따뜻한 보훈이야말로 튼튼한 안보의 씨앗이다. 6월이 되면 너도나도 현충원을 찾아 꽃 한 송이를 바친다. 고사리손들이 모여서 비석을 닦기도 한다. 정부 인사들이 방문하기도 한다. 그리고 호국보훈의 달은 지나간다. 우리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감동이 없는 연례행사를 해마다 되풀이할 것인가. 6월 1일부로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었다.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훈문화는 곧 국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공포안에 서명한 후 남긴 메시지다.
그렇다. 일회성 보훈이 아니라 365일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보훈문화, 참전용사들이 생활고를 걱정하지 않는 보훈정책, 유사시에는 너도나도 자진해서 전선으로 달려가는 국민의식,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대한민국의 국격이다. “당신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신상태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