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한 김재경 씨(앞줄 맨 왼쪽)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동부 최전선에서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김 씨는 “동료 군인들의 얼굴과 주변 환경을 노출하면 안 된다”며 자신의 얼굴만 공개했다. 김재경 씨 제공.
“끝없는 평지 위로 하루 종일 포격과 폭격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김재경 씨(33)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투입됐던 동부 전선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 씨는 6개월 동안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여단 3대대 소속으로 러시아군에 맞서 싸웠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4일~이달 4일 김 씨를 대면과 전화로 3차례 인터뷰했다. 김 씨는 2010년 육군 특전사 부사관으로 입대해 군 생활을 한 후 2014년 전역했다. 김 씨는 “이후 국가정보원에서 2018년 말까지 정보관으로 일하다 2019년부터 경북 상주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과수원 일을 도왔다”고 했다.
전장 투입 후에는 위기일발의 순간이 이어졌다. 올 1월에는 수색 작전을 하다 러시아군 탱크 T-90을 발견한 뒤 급히 한 폐가로 숨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포격을 맞고 건물 외벽이 부서졌다. 김 씨의 몸도 날았다.
그는 “머리가 땅에 부딪히며 정신을 잃었다”며 “당시 포격에 휘말렸던 팀원들 모두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러시아군 공격으로 3번 더 기절했다.
전쟁의 폭력에 노출됐던 아이들의 참혹한 피해를 지켜본 것도 악몽으로 남았다. 김 씨는 “전방에서 잠시 철수했을 때 후방에서 주민들의 치료를 도왔는데 남녀 아이들 중 상당수가 성폭력을 당한 상태였다”고 했다.
김재경 씨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모습. 김 씨 제공.
올 3월 부상 등의 이유로 귀국한 김 씨는 병원에 다니며 뇌진탕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불면증을 치료 중이다. 여행 금지 국가인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여권법을 위반한 혐의로도 지난달 1일 재판에 넘겨졌다. 김 씨의 사연을 접한 법무법인 산우에서 “법률적 지원을 주고 싶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 씨는 “지금도 현지에서 전우가 사망하면 장례식 영상을 보내온다”며 “현충일을 맞아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라는 점과 지금도 침략전쟁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고 했다. 또 “참전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침략전쟁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간 거라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