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의 이지스함에서 SM-3 요격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사진 출처 미 해군 홈페이지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그리스 신화에는 아이기스(Aegis)라는 ‘신의 방패’가 등장한다. 제우스가 ‘전쟁의 신’인 자신의 딸 아테나에게 준 이 방패는 아무리 강력한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해군 이지스함의 어원도 여기서 비롯됐다. 우리 군은 2008년 말에 취역한 세종대왕함(7600t급)을 비롯해 3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운용 중이다.
하지만 우리 이지스함은 실전 배치 15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방패를 갖지 못한 상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순 있지만 요격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때마다 ‘눈’(레이더)만 있고, ‘주먹’(요격미사일)은 없다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다. 군 관계자는 “건조 당시 미국과 일본의 이지스함과 동급의 최신형 전투체계를 탑재하고도 탄도미사일 요격(BMD) 능력은 쏙 빠진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우리 군의 이지스함들은 전력화 이후 어떤 개량도 없이 구형 전투체계로 지금껏 운용하고 있다. 유사시 한미일 이지스함이 북한 미사일의 탐지·추적 정보를 실시간 공유해도 해상 요격은 미일 이지스함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리 군의 이지스함이 BMD 능력을 갖추려면 성능 개량을 해야 한다. 3척을 성능 개량하는 데 수천억 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진즉에 성능 개량을 했으면 비용도 줄이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지력도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가급 전략무기인 이지스함의 도입 결정부터 배치까지는 조 단위의 예산과 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투입된다. 미래 위협을 정확히 판단해 이지스함의 억지력과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얘기다. 위협의 변화에 맞춰 적기의 성능 개량도 필요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조만간 ‘레드라인(금지선)’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술핵을 싣고 한국 전역을 때릴 수 있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의 실전 배치에 이어 미 본토를 겨냥한 다탄두 고체연료 엔진 ICBM 개발도 시간문제로 봐야 한다.
하지만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위협 대응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ICBM의 고각 발사 등에 대처하려면 SM-3처럼 더 높은 고도와 사거리의 요격미사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M-3를 도입, 배치하면 종말 단계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한 차례 더 요격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요격 범위에서 벗어난 수도권 방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군은 2017년 SM-3의 첫 소요 제기 이후 지금껏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고가(발당 250억 원)와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 참여 논란과 중국 반발 등을 고려한 ‘전략적 모호성’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SM-3 도입 관련 실태 조사비(4400만 원)가 국방예산에 반영된 것은 고무적이다.
‘임계점’에 다다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려면 미국의 MD 자산도 적극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MD 참여 불가를 고수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라고 본다. 주변국 눈치나 외교적 득실보다는 국가 생존과 국민 안위가 걸린 ‘안보 백년대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에도 강산이 변하도록 ‘주먹 빠진 이지스함’을 방치한 전철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