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의 나라 덴마크는 전쟁과 인연이 먼 나라 같지만, 오랫동안 군사적 강국이었다. 현대 전쟁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2명의 덴마크 장교가 있다. 육사 수석졸업생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는 독일군에 입대해서 참모본부를 창설하고, 근대 군사조직과 전술의 아버지가 되었다. 마스 요한 부크 리네만은 몰트케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전쟁사에 정말로 귀중한 업적을 남겼다. 19세기에 총과 대포에 강선이 도입되면서 화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것은 야전의 병사들에겐 떼죽음을 의미했다. 이때부터 전장은 인류가 지금껏 보지 못한 살육장으로 변했다.
총과 대포가 죽음의 신으로 군림하자 병사들은 땅속으로 숨는 방법을 찾아냈다. 포화가 작렬하기 시작하면 엎드린 병사들은 손과 숟가락까지 동원해 지면 아래를 향해 나아갔다. 거짓말 같지만 5cm라도 파고 들어가는 병사가 조금이라도 피살상률이 낮았다. 참호는 고대의 전쟁부터 존재했지만, 개인호가 모든 병사의 방탄복이 되었다. 덴마크 중위였던 리네만은 1867년 모든 병사들이 손쉽게 휴대할 수 있는 야전삽을 개발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1870년에 덴마크 육군은 야전삽을 필수장비로 도입했다. 유럽 각국이 그 뒤를 따랐다.
군대에서 병사들의 진짜 친구는 야전삽이다. 군에 있는 동안 총보다 야전삽을 든 시간이 더 많았다라는 유머가 유행하는데, 현대 야전삽의 시조가 리네만의 야전삽이었다. 참호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병사들이 야전삽으로 판 참호는 보병 돌격이 시작되기 전에 가해지는 중포의 포격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위시해서 19세기 말부터 행해진 모든 전쟁에서 참호는 엄청난 전술적 병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참호 안의 병사를 수류탄으로 공격하는 드론이다. 이젠 병사들이 숨을 곳이 없어 보인다. 200년간 병사를 지켜준 참호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호는 맹활약 중이며, 아직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드론의 무서운 개발 속도를 감안하면, 이제는 새로운 리네만의 장비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얼까?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