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치열한 전투끝 산화한 ‘호국형제’ 73년만에 함께 현충원 영면

입력 | 2023-06-06 19:11:00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 앞서 ‘호국의 형제’ 고(故) 김봉학·성학 육군 일병 유해 안장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3.6.6 대통령실 제공

6·25전쟁 당시 8개월 간격으로 전장에서 산화한 형제가 73년 만에 함께 영면하게 됐다. 유해를 찾지 못해 위패만 모셔둬야 했던 형의 유해 신원이 최근 확인돼 동생과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 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묻히게 된 것. 동생 유해는 1960년부터 서울현충원에 있었다. 국방부는 두 사람을 ‘호국 형제’로 명명했다.


● 73년 만에 함께한 ‘호국 형제’

형 고 김봉학 일병(1928~1951)은 대구 출신으로 3남 4녀 중 첫째였다. 수도 서울이 함락된 뒤 전선이 연일 남하하던 1950년 8월 입대해 5사단에 배치됐다.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가 1951년 9월 5일 강원 양구군 월운리 수리봉 일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피의 능선 전투’(1951년 8월 18일~9월 5일)에서 산화했다.

유해가 처음 발굴된 건 2011년. 머리뼈와 오른쪽 정강이뼈가 먼저 발굴됐다. 2012년과 2016년엔 각각 오른쪽, 왼쪽 넙다리뼈가 발견됐다. 유해는 70m가 넘는 반경에 흩어져있었다. 전황이 그만큼 치열했다는 뜻이다.

유해의 신원이 확인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건 2021년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진행하던 대구경북지역 유가족 집중 탐문 과정에서 막냇동생인 김성환 씨(81)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한 것. 이후 유전자 정밀 분석 등을 거쳐 올 2월 마침내 유해의 신원이 성환 씨 형인 김봉학 일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김봉학 일병은 1950년 12월 강원-춘천 부근 전투에서 전사한 또 다른 동생 김성학 일병(1928~1950년)의 형이기도 했다. 동생은 형이 입대하고 3개월 후 형을 따라 입대했다가 한 달 만에 전사했다. 동생 유해는 전사 직후 수습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 앞서 ‘호국의 형제’ 고(故) 김봉학·성학 육군 일병 유해 안장식에 참석해 묘역을 살펴보고 있다. 2023.6.6 대통령실 제공



●유가족 “두 형제 손 꼭 잡고 잠드실 것”

6일 서울현충원에선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리기에 앞서 이들 형제의 안장식이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추념식 전 안장식에 먼저 참석했다. 동생 고 김성학 일병 유해 바로 옆에 형 고 김봉학 일병 유해를 안장하는 행사였다. 대통령의 ‘호국의 형제’ 안장식 참석은 2011년 6월 6일 이명박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윤 대통령 부부는 안장식장에 먼저 도착해 유가족을 기다렸다. 두 형제 어머니가 1990년대 초에 별세했다는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고선 “아들 두 분이 전사했으니 40년 생을 어떻게 사셨겠냐”며 위로했다. 유가족은 “큰형님이 밝은 곳으로 나왔으니 두 형제가 손 꼭 잡고 깊은 잠에 드실 수 있을 것 같다”며 감사를 표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안장식은 윤 대통령 부부 외에도 유가족, 이종섭 국방부 장관, 김승겸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6·25 전사자 형제가 서울현충원에 나란히 묻히는 건 세 번째다. ‘호국 형제’ 묘역도 세 번째로 조성됐다. 형제의 고향인 대구 서구 비산동의 흙을 허토해 안장식의 의미를 더했다. 막냇동생 성환 씨는 “죽어서도 사무치게 그리워할 두 형님을 넋이라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 꿈만 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 앞서 ‘호국의 형제’ 고(故) 김봉학·성학 육군 일병 유해 안장식에 참석, 헌화 뒤 분향하고 있다. 2023.6.6 대통령실 제공



●尹 “가족 품 돌아가도록 끝까지 노력”

윤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두 형제의 사연을 언급한 뒤 “두 형제가 조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참전한 지 73년 만에 유해로서 상봉하게 된 것”이라며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국군 전사자 유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6·25 당시 국군 전사자는 16만2394명에 달했지만 당시 수습된 유해 등을 제외하면 지난해 12월 현재 유해를 찾지 못한 이가 12만1879명에 달한다. 2000년 이후 발굴된 6·25 전사자 국군 유해는 지난해까지 1만1313구였는데 유가족 유전자 시료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신원이 최종 확인된 건 210구였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호국 영웅들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