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에 8년 걸렸지만 오발령 다반사 수년간 개선, 신속-간결 3줄 메시지 완성
이상훈 도쿄 특파원
지난해 일본에 부임한 뒤 아이 전학 수속을 위해 배정된 초등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는 안내문 묶음을 건네줬다. 이 묶음에서 재난 대비 안전과 보호 관련 안내문이 교과서 배부, 학용품 안내 관련 자료보다 위에 있었다. 재난 시 머리를 보호해 주는 방재(防災) 모자를 꼭 챙겨 달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뒤 학교 공개 수업에 가 보니 모든 학생 의자 등받이에 방재모가 걸려 있었다. 사물함에 넣어두면 빨리 꺼내기 어려우니 손만 뻗으면 닿는 등받이에 항상 걸어 둔다고 했다. 피난 훈련은 연간 4번 이상 하고 안전 교과서도 있다. 도쿄에서는 매일 오후 5시 학교 종소리 같은 차임벨 방송이 온 동네에 스피커로 나온다. 긴급 재해 정보를 전하는 방재 무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기 위해 1년 365일 하루도 안 빠지고 하는 방송이다.
일본 재난 대비 시스템이 처음부터 잘 갖춰졌던 건 아니다. 전국순간경보시스템(J얼러트)이 대표적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비상시 작동하는 J얼러트는 2004년 실증 실험을 시작해 8년이 지난 2012년에야 전국에 정식 도입됐다. 처음에는 엉성했다. 지진해일(쓰나미)주의보를 잘못 발령하거나 방송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2012년 J얼러트가 발령됐지만 전국 지방자치단체 300여 곳에서 음성이 나가지 않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홋카이도 상공을 지날 것으로 예상된 북한 미사일 경보를 약 1000km 떨어진 도쿄에 발령하기도 했다.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통과하고 10여 분 지나서야 알람이 울린 적도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J얼러트를 도입한 것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때인 2017년이다. 당시만 해도 “안보 불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수시로 동해상이나 일본 영토 위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핵 위협을 높이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J얼러트를 두고 “불안을 부추긴다” “오발령은 무책임” 같은 발언을 한 정치인은 여야 막론하고 설 자리를 잃기 십상이다.
급박한 상황에 발령하는 경보는 필요한 정보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담아야 한다. 최근 한국 언론이 모범 사례로 꼽은 J얼러트 메시지도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2017년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첫 J얼러트 경보 메시지는 ‘북부 지역 상공에 미사일이 통과한 것 같다’ 정도였다. 이후 ‘○○현에서 △△현으로 미사일이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됐다. 대상 지역=□□’로 점점 더 신속하고 간결해졌다. 대피 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건물 안이나 지하로 피난해 달라’는 문구를 넣었다. 피난 해제 통지, 미사일 요격 정보도 나중에 추가됐다.
잘 다듬어진 J얼러트 메시지는 몇 년에 걸친 일본 정부 노력의 산물이다. 지난달 31일 오키나와현에 내린 3줄짜리 J얼러트에는 왜 발령됐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언제 긴장을 풀어도 좋은지 같은 필수 내용이 대부분 담겼다. 지난주 북한 정찰위성 발사 같은 일이 아니었다면 국내 경보 시스템에 이런 문제가 있는지도, 일본은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음에 또 다른 문제가 불거져 비판받더라도 차근차근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