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살던 아이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해변에 나가 갈매기들과 놀았다. 수백 마리의 갈매기가 그를 따라다니며 노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그 얘기를 듣고 갈매기 한 마리를 데려와 보라고 했다. 정말로 그런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 해변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갈매기들이 내려앉지를 않았다.
이솝우화 못지않은 이야기 모음집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화다. 이 우화집의 최초 주석자 장담(張湛)은 갈매기들이 아이를 경계하지 않은 이유를 아이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 있어 종(種)이 다른 존재와도 어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매기를 데려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이는 순수한 마음을 잃었다. 욕심이 없던 아이에게 욕심이 생기면서 갈매기는 이용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배반을 눈치챈 갈매기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공중에서만 날았다. 두 존재를 이어주던 끈이 끊어졌다, 툭.
이야기 속의 아이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삶의 어느 지점에선가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갈매기와 노는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도 마냥 순수했던 시절이 있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 자체가 놀이였고 행동 하나하나에 환희를 느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을 따지고 이용하며 그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마저도 이용의 대상으로 삼는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