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클라우지우 토히스의 ‘미래에서 온 남자’
브라질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40대의 조는 지금도 20년 전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대학 축제 날, 모든 남학생의 우상이던 헬레나가 어눌하고 공부밖에 모르던 조에게 접근해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전교생이 보는 무대 위에서 까닭 없이 조를 망신 주고 버렸다. 그 후로 헬레나는 최고의 패션모델이 되었지만, 조는 그날 이후 대인기피증이 생겨 오직 연구실에만 처박혀 산다. 소위 ‘왕따’ 신세다. 그때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는 타임머신을 발명해서 20년 전의 그날로 돌아간다.
교수인 조는 대학생인 조에게 헬레나와 엮이지 말라며, 안 그러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경고한다. 덕분에 대학생 조는 위기를 모면하지만, 과거를 바꾼 대가는 엄청나다. 현재로 돌아와 보니 조는 더 이상 교수가 아니다. 대학 졸업 후 천재성을 발휘해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이뤘다. 하지만 아내인 헬레나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친구들과도 모조리 원수가 된 냉혈한 재벌일 뿐이다. 원래의 왕따 인생보다 더 나빠진 걸 깨달은 재벌 조는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대학생 조가 무대 위에서 망신당하지 않도록 애쓰는 교수 조에게 그는 조의 인생을 원래대로 두자고, 우리가 바꿔버리면 훗날의 상황은 더 나빠진다고 설득한다. 그는 헬레나에게도 부탁한다. 조를 사랑한다면 지금 그를 버려달라고.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줄까? 34세에 감독이 될 테니 조바심 내지 말거라, 몸을 다치는 이런저런 상황들을 피해라, 이런 스타일의 사기꾼을 조심해라, 결혼은 못 할 테니 환상은 버려라 등등. 하지만 내 성격상 34세가 될 때까지 태평하게 놀다가 데뷔의 기회를 놓쳤을 거다. 건강했다면 아픈 이들을 배려할 줄 몰랐을 거고, 첫 사기꾼을 피했다면 다음에 더 큰 사기를 당했을 거다. 남자들에게 호감 살 노력을 전혀 안 한 결과 지금보다 더 인기 없는 여자가 되었겠지. 좋은 운만 가려서 만난다고 좋은 인생일까? 비행기도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만으로는 날지 못한다. 앞에서 맞바람이 불어와야 뜰 수 있는 양력이 생긴다.
그저 오늘 하루를 제대로 살라고 말해줄 테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내일의 내가 정해지니까. 오늘의 내가 차곡차곡 쌓여 미래의 나를 만든다. 간혹,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 같아 후회될 때는 가슴앓이할 필요가 없다. 분명,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까. 지름길은 놓쳤지만 돌아서 가면 된다. 때로는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좋은 풍경을 선사한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수정한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조는 현재로 돌아오자마자 미련 없이 타임머신을 없앤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