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 성쇠와 한반도… ’ 학술회의 몽골 붕괴에 군비 강화한 공민왕… 조선초엔 여진 정벌 등 적극 정책 이후 국제감각 잃고 왜란-호란 겪어… “현상 변경에 대한 논의 집중해야”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 중 ‘야전부시도(夜戰賦詩圖)’. 조선 세조 때 신숙주가 함길도에서 여진족을 정벌하는 장면을 그렸다. 동아일보DB
미중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간에서는 중국 명청교체기인 17세기 조선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패권을 쥘 쪽에 ‘줄을 잘 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흥 제국 명나라와의 갈등을 피하지 않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등 적극적 대외정책을 펼쳤던 15세기의 조선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 몽골제국 붕괴 조짐에 요동 정벌
서울대 국제학연구소 소천한국학센터와 한국역사연구회 중세국제관계사반, 중국 푸단대 한국학연구중심은 9일 오후 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중화제국의 성쇠와 한반도의 대응’ 학술회의를 연다.고려 공민왕
● 국익 지키는 선에서 사대(事大)
조선 태조 이성계
● 영향력 행사로 지역 안정 도모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외 전략이 동아시아의 안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1449년 명 정통제가 몽골의 일파인 오이라트의 포로가 되고, 수도 북경은 1년 동안 포위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조선이 만주 남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했기에 명은 방어에 힘을 집중할 수 있었고, 몽골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었다.하지만 추후 조선은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을 잃고 왜란과 호란을 겪었다. 15세기 말부터 정벌보다 국경 방어만 강화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고, 명 이외의 세력을 무시하고 명과의 관계만을 의식한 탓이다. 노 교수는 “강대국과 중견국들이 함께 만들어온 것이 동아시아 역사의 보편적 모습”이라며 “오늘날에도 ‘어느 세력과 손잡느냐’ 대신 ‘어떻게 현상을 변경시킬 것인가’에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술회의에서는 이 밖에도 ‘전근대 한중관계의 해석이 갖는 현재적 의미’(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16세기 조선의 예의지국 위상과 중화’(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조선 군신의 청 정세 인식’(김창수 전남대 교수), ‘청제국의 주변 상실과 조선의 부상’(손성욱 창원대 교수) 등의 발표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