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시절 정의구현 함세웅 신부처럼 늙은 운동권집단 5공 때같이 “투쟁” 노태우 “DJ는 5공 청산 원하지 않을 것” 국민의힘은 ‘민주화운동 계승’ 자신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3주년 기념식에서 오월 어머니회원들과 함께 행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한 지 9시간 만에 스스로 사퇴한 ‘이래경 사태’는 그 당과 이재명에 대해 많은 걸 이해하게 해준다. 물론 ‘정유정 사태’를 연상케 하는 그의 강한 멘털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결과에 대해선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 대표가 하는 일”이라면서도 사퇴는커녕 사과도 안 한 무책임성은 도저히 이해 불가다.
비명(비이재명)계 최고위원 송갑석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 이름이 나왔을 때, 아무도 몰랐던 운동권 출신 인사라고 했다. 결국 최고위원들을 움직인 건 ‘함세웅 신부 추천’이라는 보증이었을 것이다.
함세웅 신부가 누군가.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5·18항쟁 희생자 추모 미사’가 끝난 다음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됐다”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성명서가 발표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기획했던 민주화 투사였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제5공화국 시절, 감옥에 있던 이부영(전 국회의원)이 고인을 죽인 진범이 더 있다는 편지를 함 신부에게 전하지 못했다면, 그리하여 국민 분노가 폭발해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면 6·29선언도, 오늘날의 대한민국도 없었을지 모른다.
세종대로를 막고 물어보시라. 정치 외교 경제 어느 분야가 전임 문재인 정권과 비교해 더 파탄 났는지. 문 정권은 시대착오적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놓고, 반미·반일·친중·종북·반시장 정책을 쏟아내면서도 제 자식은 의전원에 보내는 이중성이 탄로나 민심을 잃고 5년 만에 정권을 잃었다. 함 신부와 늙은 운동권, 민주당뿐 아니다. 호남과 40대도 이들처럼 5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임 대통령보다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정치적 정서적 양극화, 지역주의 탓일 수 있다. 조영호 김용철 교수는 호남 유권자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강하게 국민의힘을 반대하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가 폭력이 호남 지역주의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2022년 논문 ‘5·18국가폭력과 지역주의’).
1980년 5월 광주를 피로 적신 전두환 집단은 지금의 국민의힘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그때는 민주정의당이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1981년 1월 신군부 세력 주도로 창당한 민정당은 1990년 2월 1일 3당 합당으로 해체됐다. 심지어 전두환이 자서전에서 “3당 합당은 민정당이라는 끈으로 이어진 5공과 6공의 연을 끊는, 그야말로 마지막 절연의식이라는 느낌”이라고 썼을 정도다.
민주당 김영삼이 3당 합당에 응한 것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집권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3당 합당은 건국사상 유례없는 혁명과 같은 것이며 그동안 추진해 왔던 민주화를 완결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어쩌면 그게 바로 함 신부 등 이른바 민주화 투사들의 심리인지 모른다. 5공 청산이 되면 마치 할 일이 없어져 안 되는 것처럼 무조건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는 것 말이다.
광주일고 출신 김욱은 최근 저서 ‘민주화 후유증’에서 “민자당 김영삼은 전두환 5공 청산과 하나회 척결뿐 아니라 자신의 정부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승한 민주정부임을 선언했으며 12·12쿠데타와 광주학살수괴 전두환과 일당을 재판에 넘겨 단죄했다”고 썼다. 이재명은 윤 정부를 ‘학살의 후예’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이런 민자당의 후예가 국민의힘이다. 호남이 국민의힘은 외면하면서 언제까지나 ‘광주정신’을 들먹이며 복합쇼핑몰 하나 못 짓게 하고 낙후된 시골로 살라는 민주당에 매여 식민지처럼 살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