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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텃밭서 ‘공화 주지사’ 재선… “트럼프는 볼드모트” 저격수 변신

입력 | 2023-06-08 03:00:00

美 대선주자 인물탐구〈7〉 크리스 크리스티 前 뉴저지 주지사(공화당)
트럼프 2020년 대선불복에 결별
초당적 행보로 중도층에 호감
주지사 시절 오바마와 협력 등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을 분열시키고 더 작게 만들었다.”

크리스 크리스티 전 미국 뉴저지 주지사(61·사진)가 6일 뉴햄프셔주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도전을 선언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해리포터’ 시리즈의 악당 ‘볼드모트’에 비유하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외톨이 돼지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늘 잘못된 일의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크리스티 전 주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기간 중 ‘트럼프 측근’으로 불릴 만큼 가까웠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불복을 계기로 결별했고 이제는 ‘트럼프 저격수’가 됐다. 이로 인해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배신자’ 이미지가 강하다. 주지사 시절인 2012년 10월 허리케인 ‘샌디’ 피해를 극복하려고 집권 민주당 소속의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적극 협력한 것도 공화당 주류의 미움을 샀다.

그는 민주당 텃밭으로 꼽히는 뉴저지에서 재선 주지사를 지냈다. 이에 자신의 본선 경쟁력이 공화당 내 어떤 주자보다 높다고 주장한다. 다만 공화당 경선에서 ‘배신자’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과제다. 지난달 30일 몬머스대가 공화당 대선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비호감도 조사에서 공화당 성향 유권자의 65%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2위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35%), 3위 트럼프 전 대통령(17%) 등을 월등히 앞섰다.

● ‘초당적 정치인’ vs ‘배신자’

크리스티 전 주지사는 1962년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시턴홀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1992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재선 캠프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부시 일가와 연을 맺었다. 2001년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그를 연방검사로 임명했다.

그에게 미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게 한 첫 계기는 2009년 뉴저지 주지사 선거 도전이었다. 민주당 성향의 최대 도시 뉴욕과 붙어 있으며 역시 민주당 세력권이라 어려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즉석 질문에 답하는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법조인 특유의 화려한 언변을 선보였고 민주당 소속 현직 주지사를 눌렀다.

2012년 11월 대선 직전 ‘샌디’가 미 동부를 강타했다. 뉴저지에서만 37만 채의 주택이 부서지고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민심이 동요했다. 그는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협력하며 연방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뉴저지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 원’을 타고 같이 피해 지역을 둘러봤고, “대통령의 재난 대처 능력이 훌륭하다”고 칭송했다.

지역 주민은 반겼지만 공화당 여론은 차가웠다. 특히 당시 대선에서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가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대패하자 당내에서는 “오바마 재선의 일등공신은 크리스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록 크리스티 본인은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했고 주지사 재선에도 성공했지만 당내 주류와 완전히 멀어졌다.

● 트럼프 일가와의 악연

그는 경선 전략으로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여론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지지하느냐’는 CNN 앵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모두가 죽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즉각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꼭두각시”라고 비판했다.

연방검사 시절인 2005년 탈세 등으로 기소된 유명 기업인 찰스 쿠슈너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쿠슈너의 아들 재러드는 훗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결혼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돈을 감옥에 보낸 사람인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그렇게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사람이 경선에 출마할 수 있느냐”고 그를 조롱했고, 크리스티 전 주지사는 “트럼프의 조롱은 내겐 오히려 칭찬”이라고 받아쳤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