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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내전’ PGA-LIV 전격 통일… 오일머니 챙긴 선수가 승자

입력 | 2023-06-08 03:00:00

자금 걱정 PGA-흥행 급한 LIV
골프통합 내세우며 합병 발표
LIV 선수들, 거액+출전기회 환호
PGA 선수는 “배신당했다” 분노




지난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 지원하는 LIV 인비테이셔널 시리즈(LIV)가 출범하면서 벌어진 ‘골프 전쟁’이 하루아침에 끝났다. 싸움의 당사자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LIV골프가 서로 합치기로 했기 때문이다.

PGA투어와 DP월드투어(옛 유러피안투어), 그리고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지원하는 LIV골프는 7일 공동 성명을 통해 “골프라는 종목을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획기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세 단체는 새로 출범하는 공동 소유 영리 법인 아래 하나로 뭉치게 된다. PGA투어가 새 법인 운영을 맡고 PIF는 독점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구조다. 이번 합병에 따른 승자는 PGA투어에서 뛰다가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LIV로 이적했던 선수들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년은 골프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한 해로 꼽힌다.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지원을 받는 LIV골프 출범으로 남자 골프계가 PGA투어와 LIV골프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위쪽 사진)와 야시르 루마이얀 사우디 국부펀드(PIF) 총재(아래쪽 사진 오른쪽)는 7일 그간의 갈등을 딛고 양측의 합병을 발표했다. 아래쪽 사진은 루마이얀 총재가 5월 미국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소유의 골프클럽에서 열린 LIV 대회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 AP 뉴시스 



●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LIV골프가 출범한 지난해 6월 이후 PGA투어와 LIV골프는 사사건건 대립해 왔다. 이른바 ‘오일 머니’로 불리는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LIV골프가 필 미컬슨, 브룩스 켑카, 더스틴 존슨(이상 미국) 등 정상급 선수들을 빼가자 PGA투어는 LIV로 넘어간 선수들의 투어 대회 출전을 막았다. PGA투어를 대표하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은 LIV로 이적한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배신자 취급을 했다.

LIV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몇몇 LIV 선수는 PGA투어가 대회 출전을 막는 건 독점금지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PGA투어가 상금을 크게 올린 특급대회를 지정하고 컷오프 없는 대회를 새로 만들기로 하자 “우리 걸 따라 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랬던 양측은 갑자기 손을 맞잡은 이유에 대해선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양측 모두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LIV는 당초 기대와 달리 지난 1년간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회 스폰서와 중계 방송사를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PGA투어는 LIV에 맞서 상금 규모를 크게 키우면서 재정적 압박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와 야시르 루마이얀 PIF 총재가 최근 영국 런던에서 회동을 갖고 합병에 전격 합의했다.

● PGA투어 선수들은 분노, LIV는 미소

모너핸 커미셔너는 합병 문서에 사인한 후 곧바로 PGA투어 RBC 캐나다 오픈이 열리는 캐나다 토론토로 날아가 선수들과 만났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회동에서 몇몇 선수는 모너핸 커미셔너를 “위선자”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너핸 커미셔너의 사임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너핸 커미셔너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LIV 선수들을 ‘반역자’ 취급하며 PGA투어 선수들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콜린 모리카와(미국)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 골프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안병훈은 “PGA투어를 지켰던 선수들은 패배자가 됐다”고 썼고, 웨슬리 브라이언(미국)은 “배신감을 느낀다. PGA투어 사람들을 더 이상 못 믿겠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반면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제일 먼저 LIV골프로 이적한 미컬슨은 “멋진 하루!”라는 짧은 글로 기쁨을 표현했다. 이번 합병 발표에 따라 LIV 소속 선수들은 다시 PGA투어에서 뛸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모너핸 커미셔너는 “위선자라는 비난을 감수하겠다. 과거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잘 안다”고 말했다.

● 美 정치권서도 ‘스포츠 워싱’ 논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합병 발표에 대해 “골프계를 위한 크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합의다.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남겼다. 재임 시절 사우디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가 즉각 환영 메시지를 낸 건 자신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LIV 대회가 개최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에서도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가 스포츠를 통해 인권침해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는 이른바 ‘스포츠 워싱’을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은 “PGA투어 관계자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 인권 기록을 언급하며 미국 스포츠 분야 지분 소유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며 “아마도 그들의 관심사는 인권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