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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비 줄게요” 세입자 유인…중개사·임대인 한패였다

입력 | 2023-06-08 10:38:00

전세사기 피해자 61.3%가 2030 청년층




#1. 서울에 빌라를 지은 건축주 A씨는 분양 컨설팅업자 B씨에게 시세 보다 보증금을 높게 받아 전세계약을 맺으면 일정 수수료를 주기로 했다. B씨는 이사지원금을 주겠다며 임차인을 유인해 높은 보증금으로 A씨와 전세계약을 맺도록 했다. 이후 속칭 ‘바지 임대인’ C씨에게 건물을 통째로 넘긴 뒤 잠적했다. 임차인들은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이 됐을 때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다.

#2. 50대 임대사업자 D씨는 공인중개사 등을 모집책으로 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르며 오피스텔 29채를 사들였다. 전세 보증금을 매매 가격 이상으로 받았기 때문에 자기 돈을 한 푼 들이지 않고 오피스텔을 살 수 있었다. 오피스텔 29채 매수대금을 보증금으로 조달하기 위해 전세계약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D씨가 매수한 오피스텔 모두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 매수할 때마다 오히려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받았다. 거래를 성사시킨 공인중개사에게는 중개보수를 초과하는 리베이트를 줬다.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들 몫이었다. 전세 보증금이 높았던 데다 집값까지 떨어지자 새 임차인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3. E중개사무소(부동산컨설팅사)는 매물을 부동산온라인 플랫폼에 올린 30대 F에게 접근해 매물을 팔아주는 조건으로, 매도 희망가격인 1억7500만원보다 높은 가격인 2억원으로 ‘업계약서’를 쓸 것을 제안했다. 또한 E중개사무소는 임차인G를 유인해 ‘업계약서’ 상 동일 금액인 2억원의 보증금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전세계약 체결 직후 E중개사무소는 매수인 H를 소개하며 실제로 ‘업계약서’를 쓰게 하고, 임차인 G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2억원으로 매매대금 1억 7500만원을 치르고, ‘업계약서’ 상 금액과 실제 매매대금 차이인 2500만원을 E중개사무소 일당이 수수료로 나눠가졌다.

이처럼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컨설팅업자)가 짜고 임차인을 속여 전세계약을 맺은 전세사기 사례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8일 국토교통부는 보유한 자료를 결합하는 등 면밀한 조사·분석을 실시한 결과 1322건의 거래에서 조직적 전세사기 정황을 포착하고, 해당 거래의 전세사기 의심자와 관련자 970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적발한 전세사기 의심거래의 지역별 보증금 피해규모를 분석한 결과 서울 강서구가 83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화성이 238억원, 인천 부평이 211억원, 인천 미추홀구 205억원, 서울 양천구 167억원, 서울 금천구 129억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공통적으로 빌라가 밀집한 지역들이다.

전세사기는 거래가 적어 정확한 시세를 확인하기 어려운 신축 빌라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차인들에게 이사비를 지원해주겠다고 꾀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체결하도록 유인하는 식으로 전세사기가 이뤄졌다.

이번에 수사의뢰한 거래의 피해상담 임차인은 558명으로, 이 중 20·30 청년층 비율이 61.3%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하반기에는 분석대상을 4만여 건으로 대폭 확대해 부동산 거래신고 데이터 기반 조사를 추진하는 등 수사에 도움이 되도록 공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검찰청·경찰청으로부터 수사 개시·피해자 현황 등 정보를 공유받아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전세사기피해자 결정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하는 한편 AI 및 사회연결망 분석기법 등을 활용해 중개사, 임대인 등의 연결고리 분석을 통해 전세사기 등 위험감지 시스템 구축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