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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 순식간 역주행”… 수십명 깔리고 뒤엉켜

입력 | 2023-06-09 03:00:00

수내역서 출근길 시민 14명 다쳐
“사람들 쏟아져 내려와 아수라장”
작년 점검서 ‘합격’ 지난달엔 ‘양호’
코레일 “원인 조사중… 모든 역 점검”



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며 시민 30여 명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중상 3명, 경상 11명 등 총 1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위쪽 사진). 사고 직후 코레일 측은 상하행 에스컬레이터를 모두 폐쇄하고 긴급 점검을 실시했으며 사고 원인 파악에 나섰다. 폐쇄회로(CC)TV 화면 캡처·성남=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위로 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가 순식간에 역주행하기 시작했어요. 위에서 쏟아져 내려온 사람들이 서로 깔리고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8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역 2번 출구에서 출근 중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를 당한 김민지 씨(23)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또 “출근길에 매일 이용하던 에스컬레이터인데 불안해서 앞으로는 다른 출구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수내역 2번 출구에선 지하 1층에서 지상 1층 방향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하면서 1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 30여 명 뒤엉켜 쓰러져 3명 중상, 11명 경상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건 이날 오전 8시 19분경이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위로 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춘 뒤 급속도로 역주행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불과 10여 초 만에 에스컬레이터에 타고 있던 시민 30여 명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서 서로 뒤엉켰다. 위에서 밀려 내려오는 사람 아래 겹겹이 깔린 시민들은 비명을 질렀다. 소방 관계자는 “2번 출구 에스컬레이터로 출근하던 시민들이 몰렸는데 이 때문에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사고로 3명이 허리와 다리 등에 중상을 입었고 분당차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부상을 입은 11명은 현장에서 치료를 받은 후 돌아갔다. 다리에 중상을 입은 A 씨는 “무방비 상태에서 위에서 밀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깔려 다리를 다쳤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걷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분당점과 연결된 수내역은 하루 평균 승하차 인구가 2만6532명에 달한다. 주민 이영화 씨(76)는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를 주 5회가량 이용한다”며 “얼마 전 정자교 붕괴 사고도 났는데 최근 분당구에서 안전사고가 연일 생겨 무섭다”고 했다.



● 한 달 전 ‘양호’ 판정에도 사고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는 2009년 설치됐고 길이는 약 9m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이 에스컬레이터는 지난달 10일 매달 실시하는 안전점검에서 ‘양호’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한국승강기안전관리공단에서 실시한 정기점검에서도 ‘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코레일 측은 사고 직후 사과문을 내고 “13일 합동 조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겠다. 사고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시기에 설치된 8개 역의 에스컬레이터 37대는 최대한 빨리 점검하고 이후 전국 역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일제점검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수내역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분당선 야탑역 4번 출구 에스컬레이터에서도 10년 전 비슷한 역주행 사고가 발생했다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2013년 7월 발생한 사고로 당시 9명이 중상을, 30명이 경상을 입었는데 추후 밝혀진 원인은 에스컬레이터 부품을 ‘짝퉁’으로 교체한 것이었다.

황수철 한국승강기대 교수는 “기어나 샤프트(구동력을 바퀴에 전달해주는 기계 부품)가 파손되면서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역주행을 막는 방지 장치에도 결함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사고 발생 즉시 철도안전감독관과 철도경찰 등을 사고 현장으로 급파했다”며 “조사에서 법규 위반 사항이 발견될 경우 시정 조치를 내리고 필요하면 처벌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남=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성남=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