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교감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빼어난 풍경, 생동(生動)하는 기운이 있는 곳에서는 최소 하룻밤 정도는 묵어본다는 것이다. 인체는 잠잘 때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외부의 좋은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과 가까운 충남 아산시의 외암민속마을이나 유서 깊은 도고 보양온천 등에서 굳이 1박 2일 여행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의 외암마을 전경. 좌우 양쪽 논밭 사이로 길다랗게 마을이 형성된 명당 터다. 마을 진입구인 돌다리(오른쪽 상단) 아래로 반계천이 마을을 휘감아 가듯 흐르고 있다. 안영배 기자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입구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널따란 석각(石刻)이 있다. 마을 진입로인 돌다리(반석교) 아래쪽 암반에 새겨진 ‘외암동천(巍巖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씨다. 외암동천은 외암마을이 신선들이 사는 별세계임을 뜻하고, 동화수석 역시 물과 돌이 어우러져 선계(仙界)처럼 아름다운 공간임을 의미한다. 도교 용어인 ‘동천’ ‘동화’는 보통 세속과 떨어진 채 아름다운 산수가 펼쳐지는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외암마을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공간을 버젓이 ‘동천’이라고 내걸고 있다. 신선이 머물 정도로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외암마을 입구 쪽 널따란 암반지대 바위에 ‘동화수석(東華水石)’이란 글씨(물레방아 오른쪽 아래)가 새겨져 있다. ‘외암동천’ 각석은 이곳에서 더 오른쪽 바위에 새겨져 있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마을은 입지 조건부터 범상치 않다. 우선 마을 입구 반석교 밑으로는 반계(磐溪)라고 불리는 개천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있다. 반계천은 또 마을 뒷산인 설화산 쪽에서 발원해 마을의 동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과 합류해 더욱 튼튼하게 마을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선계인 외암마을을 속계(俗界)로부터 차단하는 결계(結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모자랐던지 두 개의 자연 하천 외에 인공(人工)을 가미한 물길도 있다. 마을 상부 쪽에서 내려오는 수로를 정비해 마을 내부를 통과하게끔 유도한 다음 반계천으로 흘러내리도록 한 물길이다. 이 물길은 생활용수, 정원수 등으로 마을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외암마을 역사와 함께 해온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해마다 음력 1월14일 이곳에서 목신제가 열린다. 안영배 기자
외암마을 돌담길. 마을 내 논밭에서 캐낸 돌들로 쌓아올린 돌담이 특징적이다. 안영배 기자
외암마을 주민들은 식혜, 대추차, 한과, 강정 등을 전통 방식으로 제조해 방문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사진은 식혜 명인으로 유명한 이은숙씨가 가마솥에서 대추를 끓이는 모습이다. 안영배 기자
외암마을은 예부터 삼다(三多)의 마을로도 유명했다. 삼다는 돌·말·양반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마을 길이 전부 돌담길이듯 돌이 많고, 말(글 읽는 소리)이 많고, 양반이 많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반가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참판댁(중요민속자료 제195호)이다. 대한제국 시기 규장각 직학사, 궁내부 특진관(참판급 벼슬로 현재의 차관급) 등을 지냈낸 퇴호 이정렬(1868~1950)의 고택이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야욕을 저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수십 번이나 올렸지만 효과가 없자, 고종이 참석한 아침 조회에 등불을 들고서 말을 거꾸로 탄 채 출근하는 시위를 벌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목숨을 건 시위에 대해 “나라가 그믐 밤중처럼 깜깜해 등불을 들었고, 왕실 호위 군사들이 칼로 내리칠 때 무의식적으로 몸이 피하지 않도록 거꾸로 말을 탔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낙향해 칠은계(七隱契)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는 등 충남지역 항일운동을 이끌었고, 사망할 때까지 일제에 굴종하지 않는 ‘조선의 유민’으로 살았다. 같은 마을의 예안 이씨 일가인 이성열(교수댁)도 뜻을 같이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다.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1848~1897)이 지은 건재고택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고택 사랑 마당 내에 자리한 연못과 정자, 인공 수로 등은 신선 세상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재고택은 추사 김정희의 두 번째 부인(이간의 증손녀)의 친정이기도 하다. 가옥에는 추사 서체의 편액들이 눈에 띈다. 건재고택은 개방 시각이 정해져 있으므로 탐방 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외암마을 건재고택 내부. 정원수가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아산시 제공.
외암마을에서는 감찰댁 등 전통 한옥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거리도 준비돼 있다. 전통의상 체험을 비롯해 전통한지 및 한지부채 만들기, 떡메 치기, 엿과 강정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외암마을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충남의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외암마을의 상징적 인물인 외암 이간(1677~1727)은 ‘외암기’에서 아산(과거 온양)이 번성한 까닭을 산천(山川)과 함께 온천이라는 영천(靈泉)에서 찾았다. 아산은 온양온천, 아산온천, 도고온천 등 3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온양온천은 백제시대에 탕정(湯井·끓는 우물)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정도로 오래된 곳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이곳으로 행차해 안질을 치료한 후 온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도고온천 역시 삼국시대 신라 왕이 백제와의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치료한 곳으로 전해지는 영험한 온천이다.
동양의 4대 유황온천 중 하나로 꼽히는 도고온천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곳이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다. 2008년 재개장한 후 ‘충청도 1호 보양온천’이란 타이틀을 거머쥐며 웰니스 관광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인증 보양온천지인 충남 아산시의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풀장과 스파, 숙박이 가능한 카라반 등을 갖춘 복합문화시설로 주목받고 있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는 관계자는 “최근 45억 원을 들여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면서 “다양한 온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사상체질(태양, 태음, 소양, 소음)에 맞는 탕에 골라 들어가거나 몸을 보양하거나,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아쿠아 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온천수가 출렁이는 파도풀과 실외 유수풀 에서 수영과 스노클링 등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온천수를 활용한 스파와 물놀이 시설은 젊은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확실히 예전의 온천욕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파라다이스 스파도고의 실내 바데풀. 독일의 바데하우스를 모델로 만들어진 수(水)치료 풀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야외 캠핑장의 카라반에서 숙박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스탠더드 30대, 디럭스 20대 등 총 50대의 카라반이 준비돼 있다. 카라반마다 더블침대와 아이들을 위한 2층 벙커침대, TV, 조리시설, 화장실, 에어컨 등을 갖추고 있다.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천수 워터파크에서 놀다가 밤에는 카라반 앞 야외 테이블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등 글램핑을 할 수 있다.
총 50대의 카라반이 준비된 파라다이스 스파도고. 안영배 기자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인근에는 아산의 명소들이 있으므로 산책하듯 다녀보는 것도 좋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 및 그 둘레길, 곡교천변의 은행나무길, 봉수산 자락의 봉곡사 숲길 등은 느긋하게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 주는 ‘건강 보양길’이다.
현충사를 찾은 어린이 방문객들. 안영배 기자
곡고천변의 은행나무길. 더위를 가려주는 나무 아레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영배 기자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