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다양성 꽃피웠던 그 시절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 ◇부다페스트 1900년/존 루카스 지음·김지영 옮김/412쪽·2만2000원·글항아리
“폭포처럼 이어지는 검은빛의 향연 속에서 관대(棺臺)의 아래쪽 중앙에 문카치의 옆모습이 금박으로 장식된 대형 흰색 부조가 눈에 띄었다. …부다페스트의 길거리에 불이 켜졌다. 그 그림자 속에서 와인에 취한 도시의 밤 에너지가 생기를 되찾고, 요란하며 시큼한 소음이 밤공기의 틈새를 메웠다. 방금 지나간 이상한 휴일의 감상, 뒤늦은 애도의 감정이 흘렀다.”
아무리 봐도 소설의 문장 같지만 역사책의 도입부다. 책은 1900년 5월 1일 사망한 헝가리 화가 문카치 미하이(1844∼1900)의 국장(國葬)으로 시작한다. 한때 위대했던 이 화가의 죽음은 낡은 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 역사학자인 저자(1924∼2019)가 1900년 전후 10년 정도 기간을 대상으로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의 물리적 변화, 사람, 정치, 예술과 지적 삶, 정신의 성향 등을 그려냈다.
저자가 주목한 작가 크루디 줄러(1878∼1933)는 부다페스트를 두고 이렇게 썼다. “봄이면 이 도시는 페스트 쪽 강변을 산책하는 부인들의 향내와 제비꽃 냄새로 가득 찬다. 가을에는 부다 쪽이 이런 분위기다. 왕궁 벽 산책로에 떨어지는 밤송이 소리, 약간은 쓸쓸한 적막 속에 저쪽 간이 판매점에서 조각처럼 바람에 실려 오는 군악대의 음악. 가을과 부다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1946년 봄 부다페스트대에서 유럽 외교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소련의 위성 정권 수립을 예상하고 그해 여름 미국으로 이주, 필라델피아에 정착했다. 그리고 체스트넛힐 칼리지에서 역사학 교수로 일했다. 아름답고 쉬운 문체로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도시의 단면을 소개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