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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장원재]누구를 위하여 경계경보는 울리나

입력 | 2023-06-09 23:48:00

준비돼 있지 않았던 정부-지자체-국민
실전 같은 교육 훈련이 답이다



장원재 사회부장


도쿄 특파원 시절 손꼽히는 지진 전문가 히라타 나오시 도쿄대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난 직후였는데 히라타 교수는 “일본인이라고 대형 지진에 익숙할 거라는 건 오해”라며 “일본인 중에도 일생 동안 대형 지진을 경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등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발생했다. 히라타 교수는 “결국 일본이든 한국이든 경험을 통해 대형 지진에 대비하는 건 어렵다는 뜻”이라며 “그래서 간접 경험을 제공하는 방재교육과 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의 경계경보 발령을 둘러싸고 ‘오발령’이란 지적과 ‘과잉 대응이 낫다’는 반론이 나온다. 하지만 명백한 건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비상 상황에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안부의 경우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 경계경보를 발령하라’고 해놓고 서울시 문의전화를 받지 않아 오발령 소동을 자초했다. 서울시에서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재난 문자를 보내자 그제야 부랴부랴 서울시에 5차례 연락했고 정정 조치가 안 취해지자 ‘오발령’이란 재난 문자를 보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서울시는 더 어설펐다. 경계경보는 오전 6시 32분에 발령해 놓고 정작 재난 문자는 9분 이후 보내 북한 발사체가 서해에 떨어진 다음에 시민들이 대피하게 했다. 매뉴얼대로 보낸 재난 문자에는 경계경보 발령 이유와 대피 방법도 안 나와 있었다. 오전 7시 25분 경계경보를 해제할 때는 재난 문자 대신 일반 안내 문자로 보냈고, 해제 사이렌도 안 켰는데 모두 규정 위반이다.

서울에서 경계경보가 발령된 건 1996년 미그기 귀순 후 27년 만이다. 당시 경보 발령을 제때 내보내지 않아 서울시 경보통제소장 등 4명이 구속됐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 입장에선 일단 경보를 발령하고 보자는 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계경보 발령 시 사이렌이 울리고 방송이 나왔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많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43차례나 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민방위 훈련을 건너뛰면서 서울시도 6년 동안 사이렌 가청률(실제로 들리는 정도) 조사를 안 한 탓이다.

준비돼 있지 않았던 건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도 많은 이들이 경보를 받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했다. 북한의 거듭된 경고와 도발에 무감각해진 나머지 공격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운 것이다. 북한 도발 수위가 점차 올라간 것과 대조적으로 사재기가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2016년 구마모토 대지진 당일 현장에 있었다. 한밤중에 한국 기준 진도 9의 강진으로 침대가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리는 걸 경험하며 재난 대비 훈련의 중요성을 느꼈고 도쿄로 돌아와선 지자체 재난 훈련에도 참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왕좌왕하면서 미사일 공격은 또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결국 답은 히라타 교수의 말처럼 ‘교육’과 ‘훈련’뿐이다. 행안부와 서울시는 실전 같은 훈련을 되풀이하며 이번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해야 한다. 국민들도 귀찮아하는 대신 인근 대피소를 파악하고 기회가 있으면 훈련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일본에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게 신속한 통보만큼 ‘자조(自助·스스로 구함)’와 ‘공조(共助·이웃을 도움)’가 중요하단 말이었다. 정부와 지자체 탓만 해선 안 된다. 결국 경계경보 사이렌은 국민을 위해 울리는 것이고 이를 듣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장원재 사회부장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