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사진 No. 22]
▶100년 전 신문에서 피사의 사탑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세계 7대 경이로운 문화재’를 연속으로 소개하는 연재물 두 번째 기획기사에 소개된 사진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냥 ‘사탑(斜塔)이라고 부르는데 그 시대에는 기울어졌다고 해서 ‘피사의 경사탑’이라고 표현했었네요. 문득 저 피사의 사탑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세계의 경이(2) : 피사의 경사탑 우리 인생은 지식이 발달될수록 기이한 물건을 창조하지만 천연의 현상보다 위대한 인조물에 대하여 흠모하는 것이 곧 우리 인생의 특성이다. 그래서 인조한 ‘세계7기이’는 최초로 약 1천년 전에 로마 학자들이 수집하였나니 (1)이집트의 금자탑 (2)바빌론 시의 장벽과 懸園(현원) (3)에페수스의 따이아나 사원 (4)올림피아에 있는 주신석상 (5)할리카내수스에 있는 왕릉 (6)로드스의 거상 (7)알렉산듀리아의 등대이오, 18세기에 영불학자들이 근대 기이를 췌집하얏나니 (1)로마의 대극장 (2)알렉산듀리아의 총굴 (3)만리장성 (4)스톤헨즈의 마술사 사원 (5)피사의 경사탑 (6)중국 남경의 자기탑 (7)君斯坦府(군사단부)의 대교당이다. 사진은 제5 기이되는 이태리 ‘터스카니’주 피사의 탑이니 1174년에 전부 대리석으로 원형 8층탑을 축하였고 최상층은 체적이 소하며 종각이 되얐고 고는 180척이며, 하층벽의 두께는 13척이오 상층에는 6척인데 기초가 불완전하여 수직선에서 탑투까지 14척의 경사가 된지도 수백년이것만은 붕괴치 아니하는 것은 세인이 감히 기이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수년 전에 이태리 당국에서 그 탑의 만일의 위험을 염려하여 대리석으로 그와 연접하여 1소탑을 축하얐음으로 이 사진에서 보이는 현상은 세인이 다시 보지 못하게 되얐다.
▶1923년 신문에 실린 피사의 사탑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오늘날과 달리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대였는지, 사진의 출처와 주인에 대한 표기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 사진을 찍기 위해 서울에서 사진기자가 이탈리아 현지로 출장을 가진 않았을 겁니다. 저 사진의 주인은 일반 시민이라기 보다는 사진 전문가가 찍었을 겁니다. 카메라가 비싼 물건이라 대중화 되기 이전이었으니까요. 카카오톡으로 챗GPT에게 “1923년 세계 인구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어봤습니다. “1923년 세계 인구는 약 1.93억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근사치일 뿐이며, 과거의 인구 수는 정확한 데이터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는 추정치에 불과합니다”라고 답변을 해주네요. “그러면 그 당시 인구 중에 카메라를 소유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라고 다시 질문을 하니 “1923년에는 카메라를 소유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카메라는 고가의 럭셔리 제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인구 대비 카메라 보급율은 현재와 비교할 때 매우 낮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라고 답을 줍니다.
▶이미지가 흔해지고, 사람과 사람의 소통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체로 이용된다고 해서 지금을 사진의 시대, 영상의 시대라고 표현하는 거 같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인류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세계 각국에서 매순간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거나 표현하고 있고 우리는 그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만이 유일한 목격자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신문사 기자들만이 신기한 것을 찍어서 세상에 알릴 수 있었던 시대 말입니다. 지금은 사진의 주인이 무한 확장되는 시대입니다. 더 이상 권위적인 소스(source)에 의해서만 현실이 이미지로 재현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신문 제작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의미로 “Post-protocol era”(Costas M. Constantinou, 2018)라는 표현을 쓰는 학자도 있습니다.
▶사진기자가 사건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도 아닙니다. 작년인가요,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사람들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활주로를 이륙하려는 군용 비행기에 올라타서라도 탈출하려는 절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이륙한 비행기에서 바닥으로 사람이 떨어지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충격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찍은 사람은 기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기자도 현장에 없었지만 그 현장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그리고 아마 역사에서 한번 언급되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인이 SNS에 올린 동영상에서 결정적 장면을 기자들이 정지화면으로 캡쳐했습니다. 100년 전 피사의 사탑 사진처럼 사진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모르는 시대가 된 걸까요?
▶여기서 쓸데없는 고민 한 가지를 해봅니다. 그럼 사진기자의 존재 이유는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건을 기록하고, 심지어 AI가 이미지를 생성해 주는 시대에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현장을 기록하는 사진기자의 역할이 있을까요?
역설적으로 SNS와 AI 시대에는 전문가 그룹으로서의 사진기자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뢰성 높은 이미지를 제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의 오보는 그야말로 회사 신뢰도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사진이 계속 들어가야 하는 시대, 매번 포스팅에 들어갈 사진을 검증해야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 사람이 찍은 사진이 확실하다고 할 때 그걸 프린트하거나 포스팅하는 게 전혀 두렵거나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게 사진기자의 존재 이유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요.
▶ 피사의 사탑은 어쩌면 그대로인데, 피사의 사탑 사진의 주인은 바뀌었습니다. 사진에서 여러분은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