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1호 사진에 ‘우연’은 없어… 건강 정보 유출 우려보다 선전 효과 노린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012년 6월 모습(왼쪽)과 올해 5월 16일 모습. 노동신문
북한 ‘1호 사진’ 공개 건수 급증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 북한 매체에는 ‘1호 사진’(최고지도자 사진) 등장 빈도가 크게 늘었다. 노동신문
‘쇼잉’ 좋아하는 김정은
우선 북한 내부 요소로는 ‘쇼잉(showing)’을 좋아하는 김정은의 특징을 들 수 있다. 아버지 김정일 때와 달리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북한 정권은 그야말로 ‘사진의 시대’를 맞았다. 드론을 띄워 평양 시내 모습과 그 속의 김정은을 보여주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김정은의 개인 활동을 홍보하기도 한다. 북한 ‘노동신문’ 지면을 기준으로 할아버지 김일성은 1주일에 평균 1.32번, 아버지 김정일은 3.92번 등장한 데 비해, 김정은(집권한 2012년 1월 1일부터 17개월간)은 평균 7.58회 등장했다. 빈도를 분석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김정은의 사진은 북한 어느 시대보다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다. 전 세계 어떤 지도자와 비교해도 공개된 사진량이 많아 보인다.
두 번째 변수는 인공지능(AI)이나 빅테이터 분석 능력 등 기술 발전이다. 북한이 제공하는 고해상도 사진을 토대로 일반인 평균치를 적용해 김정은의 체중을 유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촬영 각도가 동일한 사진을 골라 같은 골격에 붙은 살의 부피를 비교함으로써 연도별 변화를 추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얼굴의 점과 티눈까지 그대로 보일 만큼 높은 해상도의 컬러 사진을 북한 스스로 제공하고 있어 얼굴 색깔로도 건강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건강 상태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는 다크서클, 긁은 흔적, 티눈, 뾰루지 등을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지워서 내보내지 않는 것일까. 북한은 얼마 전 미사일 부대 간부로 추정되는 인물을 김정은 사진에서 모자이크 처리해 배포한 적이 있다. 북한 측도 ‘뽀샵’을 전혀 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북한에선 사진일지라도 김정은 얼굴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당신이 평양 시내 아파트 완공식에 참석한 김정은의 사진을 찍는 전속 사진가라고 상상해보자. 김정은은 전날 야근하고 오늘 일정을 소화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동하는 차량에서 등받이에 기대어 잠을 잤는지 뒤쪽 머리가 가지런하지 않고 지저분한 모습이다. 찍은 사진을 골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사에 전송해야 한다. 어쩌면 당신이 고른 사진이 AP 평양지국을 통해 전 세계로 전달될 수도 있다. 당신은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뒷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할 것인가, 아니면 찍은 사진 중에서 그나마 ‘똘똘한’ 커트를 고를 것인가. 혹시 포토샵으로 사진을 건드렸다가는 고초를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을 총괄하는 누군가가 세세하게 주문하지 않는 이상 건강과 관련된 작은 힌트들은 사진에 그대로 표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북한 정권과 최고지도자의 동향을 분석하는 근거 자료가 사진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점이다. 20여 년간 북한 언론 속 ‘1호 사진’을 관심 있게 지켜봐 온 필자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이미지는 유용한 정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라면 사진 분석에 머물지 않고 휴민트(인적 정보), 텍스트, 감청 등 다른 형태의 정보를 종합해 분석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보당국도 이미 충분히 종합적인 정보 분석을 하고 있으리라 본다. 이 같은 종합적 정보에 덧붙여 사진을 본다면 그 이면에 숨은 북한 정권의 맥락과 동기를 더 깊이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북한 최고지도자의 향후 행보도 예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北 ‘야간 사진’ 공개 늘어난 배경 눈길
지금 서해에서는 북한이 쏘아 올린 군사위성 발사체의 잔해를 찾고 있다. 실패한 발사 현장이라 김정은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 성공했다면 사진이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공식 매체를 통해 고도비만 상태인 김정은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김정은 사진의 촬영과 공개에서 우연은 없다는 점이다. 1호 사진가와 그 사진의 배포를 최종 허락하는 사람들의 경력은 외부 관찰자보다 길고, 사진 선택 과정은 훨씬 전략적이라는 얘기다. 건강 정보 유출이라는 손해보다 내외부 선전 효과가 크다고 보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해 북한 사진, 특히 김정은 사진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93호에 실렸습니다]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장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