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비둘기파 경계 나선 이창용 “인플레 둔화 안심 일러”

입력 | 2023-06-12 11:17:00

한은 창립 73주년 기념사서 '금리 인하' 시장 기대 경계
"한은 감독권, 비은행권으로 넓혀야 해" 주장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물가 상승률 둔화세에 대해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한은이 매파적인 기조에서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비둘기파로 전환할 것이라는 시장 기대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2금융의 여수신 확대와 은행과 비은행권의 상호 연계성 증대에 따라 한은의 정책 대상을 비은행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총재는 12일 오전 서울 태평로 한은 별관 강당에서 열린 ‘창립 제73주년 기념사’에서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인플레이션이 아직 더디게 둔화하고 있어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라면서 “성장의 하방 위험과 금융 안정 측면의 리스크, 그리고 미 연준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연이은 매파 목소리…금리 인하 경계 높여

시장에서는 연내 기준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목소리가 높다. 물가가 잡히고 있는데다 주식 및 외환 시장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물가 상승률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2월 3.7%에서 7월에는 6.3%까지 치솟았지만 올해 5월 물가 상승률은 3.3%로 2021년 10월(3.2%) 이후 1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둔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내년 하반기께 2% 대로 내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식 시장도 활황이다. 한미 금리 격차가 1.75%포인트로 사상 최대로 벌어졌지만 이날 코스피는 2647.49에 개장해 연고점을 경신했다. 원·달러 환율 역시 1350원 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실물 경기 부진은 심화되고 있다. 금리를 낮춰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최근 1.4%로 하향했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관훈토론회에서 지난해 12월 기재부가 제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 1.6%를 다음달 초 하락 수정 발표하겠다고 시사했다.

하지만 이 총재는 최근 연이어 매파 목소리를 높이며 금리 인하 기대에 선을 긋고 있다. 이날 기념사에서는 금융 리스크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주택시장의 부진이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부문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금리 인하 시 부동산 시장 활황에 따른 가계 대출 증가를 경계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는 “중장기적 시계에서는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도 “금리를 동결시켜 놓고 앞으로 절대로 올리지 않을텐데 일종에 지금 거짓으로 겁만 주고 있다고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면서 “금통위원 6명 모두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 3.75%로 인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호주와 캐나다가 연이어 금리 인상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우리나라도 절대 금리 인상을 못할 것이라 판단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달 8일 통화정책신용보고서 설명회에서는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가 “우리나라가 호주와 캐나다와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물가 상황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고 전했다.


◆“한은, 감독권 비은행권으로 넓혀야”

이 총재는 기념사를 통해 새로운 금융 환경 변화에 맞춘 한은의 권한 확대도 주장했다.

그는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이미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넘어섰고 한은 금융망을 통한 결제액 비중도 지속적으로 커져왔으며, 은행과의 자금거래 확대로 은행·비은행 간 상호연계성도 증대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감독기관과의 정책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금융안정 목표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상시적 대출제도 등 위기 감지 시 즉각 활용 가능한 정책 수단의 확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과 지급준비, 대출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법 제 11조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은행법 제2조에 따른 은행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른 은행지주회사로 제한된다. 보험회사와 상호저축은행 업무를 비롯해 신탁업무만을 하는 회사는 금융기관으로 보지 않는다. 한은 정책의 범위를 은행을 포함해 제2금융권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감독권 확대의 또 다른 이유로 유동성 괸리 수단의 유효성을 들었다. 이 총재는 “이제까지는 기조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국외부문으로부터 대규모 유동성이 계속 공급되며 한은의 유동성 관리도 이를 흡수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운용돼 왔지만 대내외 경제구조가 달라지면서 경상수지 기조는 물론 적정 유동성 규모 등이 변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평상시에도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나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1년이 한은의 진정한 실력을 검증받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봤다.

이 총재는 “지난 1년간은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공통적으로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고 국민 사이에도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올해는 국가별로 물가오름세와 경기상황이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trade-off)에 따른 정교한 정책대응이 중요해졌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