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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낭비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경남 관광시설

입력 | 2023-06-13 03:00:00

50억원 들여 만든 통영 VR 체험관
적자 이어져 3년 만에 폐관 검토
거제시, 짝퉁-고증 논란 ‘거북선’
방치하다가 헐값에 매각하기도



50억 원을 들인 경남 통영 가상현실(VR) 체험관이 관람객 감소로 개관 3년 만에 폐관 수순을 밟고 있다. 체험관 정문에 임시 휴관을 알리는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통영시 제공


50억 원을 들여 조성한 경남 통영 가상현실(VR) 체험관이 개관 3년 만에 폐관 위기에 놓였다. 부풀리기식 장밋빛 전망과 지자체들의 치적 쌓기 경쟁이 예산을 낭비하는 ‘천덕꾸러기’ 관광시설을 양산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애물단지 전락한 통영 VR 체험관
통영시는 2025년 통영 VR 체험관을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통영 VR 체험관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지리적 배경을 살려 현재의 소매물도 등 지역의 아름다운 과거와 현재를 실감 나는 VR 콘텐츠로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2020년 개장했다.

하지만 통영 인구와 관광객 감소, 비싼 이용료, VR 콘텐츠 최신화 불가 등의 이유로 이용객이 줄면서 적자가 이어졌다. 3년 동안 이곳을 다녀간 관람객은 연간 5000명으로 하루 평균 20명도 되지 않는다. 개관 당시 예상 관람객 10만 명의 5%도 되지 않는 수치다. 인건비와 전기요금 등 유지비가 늘면서 개관 이후 지금까지 3억 원의 적자가 쌓였다.

통영시는 임시 휴관과 함께 경영 개선을 위한 진단에 들어갔고, 경영 컨설팅을 맡은 민간 업체는 장기적으로는 시설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폐관 뒤 다른 용도로 활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문제는 당장 폐관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공모사업으로 ‘놀이시설 내구연한’ 기준인 평균 5년을 다 채우지 못할 경우 해당 시설에 지원된 국비를 반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원받은 국비는 25억 원이다.

통영시 관계자는 “폐관이 가능한 2025년 전까지 적자 폭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고 있다”면서“폐관 이후엔 어떤 공간으로 활용할지에 대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경남 관광시설 곳곳에서 세금 낭비
통영 VR 체험관처럼 치밀하지 못한 경제성 검증과 부실한 관리로 관람객에게 외면을 받고 예산만 낭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토종 민물고기를 전시하는 경남 함양군의 토속어류생태관이 대표적이다. 환경부 예산 14억 원을 포함해 총 69억 원을 투입해 건립한 토속어류생태관은 전시 중인 민물고기가 대거 폐사한 채 발견되는 등 관리 부실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수년째 이어진 부실한 관리로 개장 초 하루 평균 200여 명이던 방문객은 최근 10분의 1 수준인 20명대로 떨어졌다. 함양군은 입장객이 급격히 줄면서 올해 1월부터 휴관에 들어갔다. 함양군은 “2009년 개장한 토속어류생태관은 민물어류를 전시하고 있으나 시설 노후화, 운영 전문성 부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입장객이 급격하게 줄고 있어 휴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근의 함양곤충생태관은 2019년 11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지만 아예 문조차 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16억 원을 들여 만든 경남 거제시 조선해양문화관 야외광장의 거북선. 2010년 전시용으로 제작됐다가 짝퉁 논란 등으로 수년째 방치되다 최근 헐값에 팔렸다. 거제시 제공 

거제시의 거북선 헐값 매각도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꼽힌다. 문제의 거북선은 2011년 ‘이순신 프로젝트’의 하나로 16억 원의 예산을 들여 120t 규모로 제작했다. 그러나 국산 소나무 대신 수입 목재를 쓰면서 ‘짝퉁’ 논란과 부실 고증 논란 등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흔들림이 심하고 비가 새는 등 관리가 힘들어 사실상 수년째 방치돼 있다가 올해 2월 공매 절차가 시작됐다. 거제시는 거북선 매각 예정가인 1억1000만 원에 입찰 공고를 냈지만 7차례 유찰됐다가 지난달 16일 8번째 입찰에서 60대 여성 A 씨가 154만5380원에 낙찰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관광객 유치 같은 모호한 정책적 판단은 자제하고, 빈틈없는 경제성 검토로 예산이 낭비되는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