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발원지… 명승지로 꼽혀 모르몬교 소유 중… 매각 추진 “대표적 문화유산… 공원 조성을”
서울 종로구 백운장 터에 있는 바위에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고종의 대신으로 백운장을 지었던 동농 김가진이 1903년 써서 새긴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민족대동단 총재 동농 김가진 선생(1846∼1922)이 지내며 활동했던 서울 백운장(白雲莊) 터가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팔릴 처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계천 물길이 발원하는 곳으로 조선 시대부터 명승지로 꼽혔던 이 터를 공공이 나서 역사·생태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운장의 역사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우여곡절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고종의 대신이었던 김가진은 1890년대부터 이곳에 별서(별장) 터전을 잡은 것으로 보이며, 1904년 창덕궁 비원의 중수를 마친 뒤 고종의 권유로 백운장을 짓고 살게 됐다고 전한다. 그러나 1916년 집사가 인장을 도용하면서 백운장의 소유권은 헐값에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어갔다. 김가진은 소송을 벌이던 중 3·1운동을 맞았고, 대동단 총재로 추대돼 활동하다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진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다. 광복 후 후손들이 적산이 된 백운장을 불하받으려 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2년 교회에 매각됐다. 김가진이 1903년 백운동천(白雲洞天·백운 계곡 하늘이 열린 곳)이라고 써서 새긴 바위가 여전히 터에 그대로 있다.
환경적 가치도 높다. 백운장 터에서 시작되는 백운동천(白雲洞川)은 청계천 수원(水源) 중 가장 길어 청계천의 발원지로 꼽힌다. 20세기 초 복개됐지만 여전히 도로 아래로 물이 흐른다. 서울시는 지난해 중학천과 함께 백운동천의 옛 물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단 개발되면 돌이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서울시 등 공공이 나서 공간이 지닌 역사, 인문지리, 생태적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덕 전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백운장은 경화사족(조선 후기 한양의 양반)의 별서(별장) 공간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고,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며 “역사공원으로 만들면 주변 문화자원과 연계해 서울시 문화벨트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를 설계했던 허서구건축사사무소 허서구 대표(전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물길 복원과 연계해 백운장 터를 기부받거나 매입한 뒤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면 청계천의 자연 발원지가 회복되고, 물과 공존하는 도시로서 서울의 환경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공원을 통해 시민들이 인왕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