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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잇따르며 혼란 가중… 유효성 판단 왜 엇갈리나

입력 | 2023-06-13 03:00:00

임금피크제 궁금한 점 Q&A
정년 늘어도 임금 감소 폭 적정해야… KB신용정보 직원들, 사측 상대 승소
대법원 제시한 합법 기준뿐 아니라 근로자 동의 절차 적절했는지 등
사안별로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결



게티이미지코리아


최근 KB신용정보 등 개별 기업이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 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연장하거나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 이상인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2016년 ‘60세 정년’이 법제화될 때 많은 기업이 이로 인해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대한 판단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판결을 내놨지만 여전히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피크제 관련 궁금한 점을 문답 형식으로 살펴봤다.

―대법원이 제시한 ‘유효한 임금피크제’의 기준은 무엇인가.


“지난해 5월 대법원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퇴직 연구원이 제기한 소송의 판결을 통해 합법적인 임금피크제로 인정받기 위한 4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의 적정성 △업무 강도 완화 등 임금 감소에 따른 적절한 보완 조치 △감액 재원이 제도 도입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이다.

다만 해당 판결은 정년을 연장하지 않고 기존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기간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가 효력이 있는지를 다툰 결과다.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의 경우 근로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늘어난 정년이 임금 감소에 따른 보완 조치로 인정된다.”

―그렇다면 정년 연장과 함께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모두 유효한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정년이 늘어도 그에 비해 임금 감소 폭이 지나치게 크다면 제도의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지난달 1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가 KB신용정보의 전·현직 직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6년 정년을 기존 만 58세에서 60세로 늘리는 대신 만 55세부터 성과에 따라 직전 연봉의 45∼70%를 지급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재판부는 “근무기간이 2년 늘어났지만 만 55세 이후 받을 수 있는 총액은 오히려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며 직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합법적인 임금피크제로 인정받기 위한 적절한 임금 감소 폭은 얼마인가.

“개별 사안마다 법원에서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줄어든 임금뿐 아니라 업무 강도 완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로자의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이 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도 당시 판결에 대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모두 무효라는 뜻은 아니며,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경영계에서는 “기준이 모호해 오히려 혼란스럽다”며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 외에 따져볼 부분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 근로자 동의 절차를 제대로 거쳤는지도 중요하다. 지난달 30일 대구지방법원 민사14부는 대구·경북 지역의 한 농협이 도입한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서 무효 판결을 내렸다. 해당 조합은 2016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개별 사업장마다 공문을 보내 과반수 근로자에게서 동의서를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회신된 동의서 대부분이 공문 발송 다음 날 제출돼 근로자들이 모여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가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동의서의 형식과 제출 과정 등을 토대로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농협이 퇴직자 5명(원고)에게 인당 2400만∼6500만 원씩의 임금피크제 삭감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혼란을 해소할 방안은 없을까.

“사실 임금피크제는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2016년 60세 정년 법제화 때 고령 근로자일수록 높은 임금을 받는 연공형 임금체계를 같이 개선해야 했지만 당장 고칠 수가 없어 등장한 제도다. 하지만 이제 60세 정년이 보편화돼 정년 연장의 혜택이 사실상 사라졌고, 근로자 고령화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임금피크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계속 고용을 위해 임금피크제를 대신할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임금의 연공성을 줄이고 직무나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