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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IT] 기술유출 판례 (5) 포탄 제조기술 불법 수출 사건

입력 | 2023-06-13 09:23:00


‘판례’란 법원이 특정 소송에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입니다. 법원은 이 판례를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재판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IT 분야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속도보다 현저히 빠른 특성을 보여 판례가 비교적 부족합니다. 법조인들이 IT 관련 송사를 까다로워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IT 분야에도 참고할 만한 판례들이 속속 쌓이고 있습니다. IT동아는 법무법인 주원 홍석현 변호사와 함께 주목할 만한 IT 관련 사건과 분쟁 결과를 판례로 살펴보는 [그때 그 IT]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포탄 제조기술 불법 수출 판례’로 본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 문제(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5. 26. 선고 2015고단17 판결 등)

“실형을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형사 사건으로 법률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의뢰인이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 실형을 살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입니다. 실형 가능성에 대해서는 해당 사안의 주요 사실관계와 더불어 법정형, 대법원 양형 기준 및 유사 사례의 판결 등을 면밀하게 따져 봐야 현실적인 의견을 드릴 수 있지만, ‘동종 사건으로 이미 고액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면 이번에는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하는 편입니다. 재범에 대해서까지 법의 관용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양형 기준 내 집행유예 기준에서도 통상 ‘동종 전과가 있는 경우’를 집행유예 판단에 있어 주요 참작 사유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 유출 등 지식재산권 범죄의 경우, 5년 이내에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거나 3회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집행유예를 선고해서는 안 되는 주요 참작 사유에 해당합니다(2022 대법원 양형기준 참조).


다만, 양형 기준상 집행유예 가능성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어 기술유출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재차 기술유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반드시 실형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고려하더라도, 국가기술 유출과 같은 중대 범죄에 연루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실형 위험을 감수하면서 같은 범죄를 저지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해당 사건으로 언론에 대서 특필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치 보란 듯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경우라면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검찰은 지난 2006년 12월 6일 수사결과, 방산물자를 취급하는 일부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얀마 군부에 국내 포탄 제조 기술과 생산설비 일체를 불법 수출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위 컨소시엄 관계자들은 국방과학연구소나 국내 방위산업체 등에서 포탄 제조에 관한 기술자료를 은밀히 입수한 뒤 미얀마 국방산업소에 제공하기로 하고, 기술 이전의 대가로 1억 3,338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1,640억원)를 지급받는 내용의 계약을 비밀리에 체결했습니다. 마치 일반 산업기계를 수출하는 것처럼 포탄 제조장비를 수출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당시 북한이 미얀마 군부와 불법 무기 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에, 각 언론은 국내 포탄 제조 기술이 북한에 제공됐을 가능성에 대해 연일 보도하며 중요한 이슈로 다뤘습니다.

검찰은 위 컨소시엄 참가업체 대표이사 등 관련자 16명을 적발해 대외무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 결과 위 관련자들에 대해서 집행유예 또는 고액의 벌금형이 2010년 12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정됐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06고단6754, 2007노4067, 대법원 2008도 4233). 검찰 수사가 개시되면서 미얀마에 포탄 제조 기술을 수출하는 프로젝트는 중단됐기 때문에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2014년 1월경, 검찰은 국내 포탄 제조기술을 미얀마에 재차 불법 수출하려 한 무역업체 대표 등 관련자를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무역업체 대표는 2006년 12월경에도 불법 기술 수출 혐의로 기소돼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입니다. 조사결과, 기존 사건의 상고심이 진행 중이던 2010년 초순경 중단됐던 포탄 제조기술을 미얀마로 수출하는 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하고 약 760억원을 지급받기로 약정, 3년여에 걸쳐 포탄 제조기술을 미얀마에 재차 불법 수출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법원은 무역업체 대표의 경우, 과거 허가 없이 전략 물자를 수출한 사건에 연루돼 대외무역법 위반죄로 벌금 1,000만원을 받은 적이 있음에도 반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거액의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기 위해 중단된 사업을 재개, 포탄 생산기술을 국외에 유출하기에 이르렀으므로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롭게 유출된 기술의 양이나 정도가 그리 중하다고 볼 수 있는지, 문제가 된 기술 유출로 인한 국가적 피해가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등에 의문이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무역업체 대표를 포함해 관련자 3명에 대하여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해 최종 확정했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14고단17, 2016노1949, 대법원 2017도12958).

1심 판결문에 무역업체 대표가 “공판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죄책을 줄이기에 급급하고, 외화벌이를 위해서라도 미얀마 국방산업소와 체결한 각종 계약을 계속 이행하고 싶다는 듯한 의사를 피력하는 등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명시된 것으로 볼 때, 위 대표가 재판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그리고 그런 모습이 재판부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형을 면해 당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마약범죄, 학교폭력, 성범죄 등에 대한 엄벌주의 기조에 대해 의견이 다분합니다. 범죄예방을 위해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국가기술 유출이 미칠 파급력을 고려할 때 단 한 번의 시도조차 있어서는 안 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결코 선처를 바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음 기고에서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의 세정장비 기술유출 판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

홍석현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제4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가, 현재는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동아닷컴 IT전문 김동진 기자(kd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