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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골프의 승리가 尹 외교라인에 주는 교훈[오늘과 내일/이승헌]

입력 | 2023-06-14 00:04:00

文의 죽창가 대일 정책처럼 한중관계 역대 최악
미중관계 갑작스러운 해빙 시 우린 어떤 대책 있나



이승헌 부국장


누구도 예상 못 한 시나리오였다.

지난 1년간 세계 스포츠계의 핫이슈였던 PGA투어와 LIV골프 간의 갈등이 갑작스러운 합병 발표로 일단락됐다. 으르렁거리던 양 진영 수장이 아무도 모르게 물밑 협상을 했던 것이다. 미 언론은 대체로 LIV골프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오일머니가 배후인 LIV골프가 107년 전통의 PGA를 어떤 식으로든 병합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와 함께 손해를 감수하고 PGA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로리 매킬로이는 “희생양이 된 기분”이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않았다.

필자는 두 조직의 갈등과 봉합 과정을 국제 정치 질서의 프레임으로 관찰하곤 했다. PGA가 전통과 연대를 중시하는 가치 동맹이라면 LIV는 돈이 기준인 이익 동맹. 호불호를 떠나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정글과 같은 국제 정치 지형에서 실질적 국익보다 가치, 신념을 관계 설정의 스탠더드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외교 정책과 철학은 PGA투어와 LIV골프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한미동맹은 군사 동맹으로 시작해 경제 안보, 사이버, 우주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지만 핵심은 여전히 군사 동맹이다. 4월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한미는 민주 진영이라는 가치 연대에 기반해 북핵 억지를 위한 워싱턴 선언을 도출했다. 하지만 IRA나 반도체법 등 한국 기업을 옥죌 수 있는, 돈이 직접적으로 걸린 이슈에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부족했다. 중국이 미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에 제재를 가하자, 미국은 삼성 SK 등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시장 확대를 초장에 제어하려 했다. ‘가치 동맹으로서 중국 문제는 함께 희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 달라”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한일 관계 정상화도 한미일 3각 축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이뤄진 측면이 크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죽창가 식 반일 정책은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우리가 강제징용 해법 제시라는 ‘통 큰 결단’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라는 이니셔티브를 던진 후 어떤 실질적 이익을 얻었는지 냉철하게 점검해 볼 때가 됐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앞에서 조선 말기의 위안스카이 같은 언행을 보이고 대통령실까지 정면 대응에 나설 정도로 지금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대적 대일 정책이 윤 정부에선 대중 정책으로 치환된 듯하다. 어느 때보다 험악한 미중 관계는 여기에 기름을 부어 여권에선 “이참에 중국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 “싱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혹 미국에 기대서 이런 ‘차이나 배싱’을 한다면 이는 위험천만할 수도 있다. 물밑에선 대중 관계를 최악으로 몰지 않으려 고민하는 게 워싱턴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빠르면 18일 베이징을 방문해 친강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한다. 왜 그럴까. 미중 관계 파탄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급 교류가 끊긴 한중 관계와는 미묘하게 다른 상황이다.

요새 외교가 원로들을 만나면 “큰 방향은 좋은데 우리가 어떤 이익을 취할지에 대한 디테일이 아쉽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외교는 형이상학적 가치와 명분을 내세워도 국익 외에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 민주 진영 내에서 위상 강화, 바이든과의 스킨십 그 어떤 것도 이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용산 대통령실이 조만간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하반기 외교를 대비했으면 한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