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필수부품 장기계약 강요 혐의 시정안 동의의결 기각… 첫 사례 시정명령-과징금 부과 가능성 커져 브로드컴 “동의의결 미승인에 유감”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에 불공정한 장기 계약을 강요해 ‘갑질’ 혐의를 받아 온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자진 시정안을 기각했다. 삼성전자의 피해를 보상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기각 결정으로 과징금 부과 등 제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는 7일 전원회의에서 브로드컴이 제출한 최종 동의의결안을 기각했다고 13일 밝혔다. 공정위가 동의의결을 개시한 뒤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2011년 제도 도입 후 처음이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피해 보상을 고려해야 한다”며 브로드컴의 자진 시정안이 “피해 보상으로 적절하지 않고 유일한 거래 상대방인 삼성전자도 시정 방안에 대해 수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동의의결 인용 요건인 거래질서 회복이나 다른 사업자 보호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기각했다는 것이다.
앞서 공정위는 삼성전자에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스마트폰 필수 부품을 팔면서 3년 장기 계약을 강요한 혐의로 브로드컴을 조사한 뒤 지난해 1월 브로드컴에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보내 제재에 착수했다. 이에 지난해 7월 브로드컴은 공정위에 동의의결 개시를 신청했다.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피해 구제 등 시정안을 내면 공정위가 이를 심사해 과징금 부과 같은 제재 없이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가 브로드컴과 협의해 올 1월 공개한 잠정 동의의결안에는 반도체 업계 상생 지원을 위해 2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기존 구매 제품에 대해 3년간 품질 보증과 유상 기술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공정위가 동의의결 개시로 중단했던 본안 심의를 재개하면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등 제재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브로드컴이 제시한 상생기금 규모인 200억 원을 넘기는 어렵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가 제재 결정을 내리면 삼성전자가 향후 브로드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할 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3년간 매년 7억6000만 달러(약 9700억 원) 이상의 부품을 사지 않으면 차액을 브로드컴에 물어주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브로드컴은 2019년까지 삼성에 통신 모뎀을 독점 공급했지만, 같은 해 경쟁사인 퀄컴에서 비슷한 제품 개발에 성공하자 고객사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이에 브로드컴은 장기 계약을 강요하며 선적 중단, 기술 지원 중단 등을 무기로 빼들었다. 퀄컴 제품이 아직 생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양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브로드컴과 ‘울며 겨자 먹기’식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