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애들에게 ‘빵’ 아닌 ‘사랑’ 준다 생각…그만둘 수 없죠” [따만사]

입력 | 2023-06-15 12:00:00

제과점 ‘래미안 제빵소’ 이주희 대표 인터뷰



‘래미안 제빵소’ 이주희 대표. 본인 제공.


“보육원 아이들에게 더 자주 주지 못해 미안해요. 마음 같아선 매일 주고 싶은데….”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래미안 제빵소’의 이주희 대표는 한 달에 한 번 보육원 아이들에게 빵을 선물한다. 틈틈이 아이들에게 빵과 같은 간식이나 선물을 보낸 것은 25년 전부터지만 정기적으로 보낸 것은 2년 전부터다.

이 대표가 보육원 아이들에게 눈을 돌린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 때문이다.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제빵 일을 하는 임성택 씨는 친형과 보육원에서 자랐다. 이 대표는 20대 시절 만났던 남편과 종종 ‘어머니’인 보육원 원장님도 만나면서 그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게 됐다.

“어느 날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라고 물어봤어요. 아이들에게 남다른 관심이 있는 남편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보육원 봉사가 시작됐어요.”

초반에는 명절이나 연말 때 빵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이후 점점 횟수를 늘려나가기 시작했고 많이 갈 때는 한 달에 2~3번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가게 사정이 어려워지며 한 달에 1번으로 횟수를 줄였다. 이 대표는 자주 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그래도 아예 못 가는 것보단 꾸준히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빵도 마구잡이로 보내지 않는다. 보육원에 일일이 전화해 어떤 날이 좋을지, 어떤 빵을 보내면 좋을지 다 물어보고 정성껏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달한다. 이 대표는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내 아이가 먹을 빵이라 생각하면서 좋은 재료로 만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크리스마스에 보육원에 빵 전달한 이주희 대표, 아들 노아 군, 남편이자 제빵사인 임성택 씨.


“코로나 기간에 한 보육원에 간 적이 있는데 구석 한쪽에 다른 곳에서 보낸 빵이 한가득 있더라고요. 모른 체 하고 그냥 빵을 전달했는데 보육원 관계자가 ‘오래된 빵을 보내 먹을 수가 없는 상태여서 저기다 놔뒀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보육원은 ‘오래된 건 아니죠?’라고 묻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흰 방부제를 넣지 않고 바로 만들어서 보내드린다’며 안심시켜 드리기도 했죠.”

이 대표는 보육원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빵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동네를 다니다가 눈에 띈 ‘치매 노인 센터’에 3개월에 한 번 정도 빵을 보낸다고. 그는 “수저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식사를 제대로 못 하시는 경우가 있어 팥빵 같은 종류를 손에 쥐여 드리면 잘 드시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시간이 있으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눔은 그의 ‘천성’이었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눈에 밟혔다고. 자신이 뭘 들고 나가는 날엔 아버지가 “너 또 누구한테 뭐 주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라면 봉투에 몰래 쌀을 담아 친구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누가 수레 같은 거 끌면 뒤에서 밀어줘야 마음이 놓였어요. 길거리에 난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면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죠. 지금도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저희 언니, 오빠가 ‘너도 못 사는데 누굴 도와줘. 너나 좀 잘하고 살아’라고 해요.”

사실이 그랬다. 이 대표는 넉넉한 형편에 빵 봉사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래미안 제빵소’를 하기 전인 2014년에 다른 베이커리를 연 적이 있다. 그런데 남편이 허리디스크 때문에 응급실에 자주 갈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고 이 대표도 몸이 좋지 않아 가게 문을 자주 닫았다. 그러다가 2년 만에 가게를 접게 됐다.

‘영끌’을 하며 차린 가게를 닫으니 남은 건 빚밖에 없었다. 결국 파산하는 지경까지 가면서 6년간 신용불량자로 살아야 했다. 이후 남편이 취업했지만, 회사가 폐업하며 직장인으로도 살아갈 수 없게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은 말 그대로 간장에 밥만 겨우 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우리 다시 해보자”고 마음을 다졌고 여러 지인의 도움을 받아 2020년 9월 지금의 ‘래미안 제빵소’를 열게 됐다.

본인 제공.

본인 제공.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이 대표는 빵 봉사만큼은 정기적으로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받은 사랑을 돌려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는 “지금 가게를 차릴 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며 “사정을 듣고 지인들이 돈을 모아주셨다. 덕분에 지금의 이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사랑이 크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좀 덜 먹어도 아이들에게 더 주고 싶어요. 저희는 아이들에게 빵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랑을 준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만든 빵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으며 부모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요.”

이 대표에겐 큰 꿈이 있다. 장사가 잘 돼 가게를 넓히게 되면 보육원을 퇴소하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 임 씨의 꿈이기도 하다. 그는 “남편이 보육원을 퇴소하며 받은 자립금은 300만 원 정도인데 이걸 가지고 친구 2~3명과 살아야 했다”며 “다행히 먼저 퇴소한 남편의 친형이 제빵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남편은 기술을 익혀 돈을 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기술이 없으면 생계를 이어 나가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고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런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면서, 함께 살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인 거 같아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